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드나잍호텔 Sep 05. 2022

곱게.

고와지는 계절





나를 규정짓기는 싫지만 나는 덜렁거리고, 세심한 편이 아니다. 뭐든 꼼꼼하게 깔끔한 마무리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래서 부럽고 보기가 좋다. 스트레스받지도 않으면서 단정하게 정리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모습이다. 누구나 하기 귀찮고 싫은 일이 여도 가지런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때론 나도 고운 나로 변모하고는 하는데 가만가만 조용조용 곱게 무언가를 만지고 정리할 때가 있다. 모든 컨디션이 좋을 때 그렇게 고운 모습이 나오는데 그럴 때 굉장히 기분이 좋아지고는 한다.



꽃을 만질 때같이 즐겁고 아름다운 시간이 또 있을까?


1,2주에 한 번씩 남대문 꽃시장을 들락날락하던 때가 있었다.


향긋한 꽃더미 속을 걸으면 한 주간의 스트레스가 싹 사라지고는 했다. 예쁜 데다가 살아있으니 그 아름다움이 압도적이었다. 꽃을 사 와 곱게 다듬어 화병 몇 개에 나눠 담으면 그 꽃과 어울리게 주변을 정돈하고는 했다. 의식같이 행했던 일들이 나를 얼마나 행복하게 했는지 떠올렸다.


그 당시의 힘든 시간을 극복해냈던 방법이었다. 참을성이 부족했기에 조금 더 인내했으면 좋았을걸 하면서 후회도 하고 자책도 했었는데 돌이켜 보니, 난 정말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부서지고 상처 입은 마음을 다독거리며 곱게 정리하는 재주가 있었다.


누군가를 탓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 나를 탓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는 건 이 계절에 적응하게 되었다는 의미라고 받아들인다. 내가 나를 좋아하는 일이 다시 마음에 들어와 있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한잔 마시고, 곱게 다린 옷을 입으며 평온한 하루를 시작했다.


그다지 소질도 없고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 여기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집안일도 슬슬 다시 제자리를 찾아간다. 더위에 지쳐 널브러졌던 생활과 몸, 마음이 정돈되기 시작한다.



매일 그럴 수 없지만 곱게 삶을 빚을 수 있는 오늘이 좋다. 이제 잠시 드러누워 달콤한 휴식을 가져야지. 몇 권 쌓인 책들도 몇 페이지 읽어야지. 이번 가을은 조금 더 고와져야지.

작가의 이전글 나에게 유의미한 글쓰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