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비가 잠깐 내렸다가 그치는가 싶더니, 가을 햇빛이 만화처럼 드리워졌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건조함이 들이닥쳐 오겠지만 요즘의 날씨는 그야말로 산책하기 좋은 날씨.
이 아름다운 낮시간을 일에 매여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래도 볕이 드는 곳, 바람이 드는 곳에서 일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옮겼다. 오전일을 마치고 올라오는 계단에서 보니,
옆집 담벼락 위에서 고양이가 낮잠을 잔다. 따스한 가을볕을 즐기는 가장 멋진 녀석이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이 계절에 우울이란 없다. 우울한 빛이 안 드는 어두움과 찌는 듯한 더위에 어울린다. 이렇게 좋은 바람을 맞으며 내 몸을 휘감았던 우울은 살짝 증세를 숨긴다.
사람은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 오늘도 한다. 춥고 더우면 괴로워지는 마음은 계절에 따른 식물들의 변화와 닮아 있다. 마음도 형체만 없을 뿐 풀과 꽃과 나무와 다른 것이 없다.
다음 달에 엄마의 생일을 맞아 가족들과 1박 여행을 하기로 했는데, 가장 단풍이 절정인 10월 말- 마운틴뷰는 모조리 만실이고 한강뷰만 남아 있었다. 작년에 봤던 그 아름다운 산의 모습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보고 싶었는데 여러모로 아쉽다. 그래도 숙소 주변을 산책하며 이번 가을의 축복도 눈 속에 꼭 담아 와야지.
친구들을 데리고 집에 온 큰아이와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내방까지 울린다.
열두 살, 남자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아직 귀엽고 청량하다. 뭐가 그리 좋은지 웃음을 주고받는 아이들을 보면 내 마음이 너무 좋아진다. 간질간질한 느낌이 든다. 아이들의 행복함이 내게도 전해져 온다. 감정은 언제나 그렇게 곁을 물들이는 것이다.
어느덧 한 달 넘게 매일 글을 쓰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쌓여서 늘거라 생각했는데 저절로 되는 것은 역시나 없었다. 책을 읽지 않고 있으니 글감이 턱없이 부족해졌다.
오히려 초반에는 그 간 쌓아 놓은 이야기들을 풀어내다 보니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글을 쓰고는 했는데 요 며칠은 쥐어 짜내는 느낌으로 지금 순간을 묘사하는데 그치고 있다.
여행을 좀 갈 때가 되었나, 좀 다른 곳으로 가봐야 하나- 글을 쓰면 나의 현재 상태를 스스로 진단할 수 있다. 생각의 흐름이 순조롭지 않다는 것을 눈치챌 수가 있다. 새로운 자극과 느낌이 몸과 마음으로 흘러들어오면 기존의 나쁜 기분이나 생각들이 저절로 빠져나간다.
빛이, 바람이 내 몸을 통과하여 지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각이야 말로 나라는 필터를 통해 지나가는데 좋은 기분을 새롭게 맞이 하지 않으면 물을 마시지 않아 독소가 빠져나가지 않는 몸 상태로 살아가는 것과 같다. 좀 많이 귀찮아도 이번 주에는 자연을 흠뻑 맡고 와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쌓인 악감정을 탈탈 털어내고 맑고 밝은 것으로 가득 채워 올 채비를 하고,
가을을 모두 싹 끌어 담아와 겨울에 추억하며 버틸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