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고 너답고 우리 다운 시간
너무도 다른 나라, 독일
한국과 정반대라고 해도 될 정도로 아주 다른 나라, 독일. 당연히 우선시해왔던 가치들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고, 익숙하던 삶의 방식대로 살기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깨달은 곳이다. 몇몇 친구들은 내가 이렇게나 다른 독일에서 지내는 것이 불편하고 심심하지는 않은지 묻는다. 서울에서의 나의 삶과 달라도 너무 달라 보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더워 죽겠는데 뜨거운 커피에 목 막히는 아이스크림, 느끼한 크림까지 얹어 아이스커피(Eiskaffee)라며 마시는 사람들을 보며 놀라는 것도, 독일 연방 공화국 기본법 1조 1항인 "인간의 존엄성은 훼손될 수 없다. (Die Würde des Menschen ist unantastbar.)"가 얼마나 많은 사고방식과 의사결정의 토대가 되는지를 체감하는 것도, 내가 이곳에서 얼마나 이질적인지를 보여주는 것만 같다.
하지만 이렇게 음식부터 가치관까지 다른 이 나라에서의 삶은 의외로 꽤 괜찮다. 마음에 드는 점들은 매 순간 감사하고 누리며, 마음에 들지 않는 점들은 외국인이라는 위치를 이용해 한 발짝 거리를 두거나 열심히 불평을 한다. 재미있는 점은 독일인들은 스스로를 불평을 잘하는 사람들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독일 친구들은 내가 열심히 독일 생활에 대한 불평을 토로할 때면 그것이 오히려 독일 문화에 적응했다는 방증이라고도 한다.
다 커서(!) 해외로 나온 덕분에 한국인이라는 정체성, 한국 문화, 한국어가 내 안에 굳건하게 중심을 지키고 있다는 점도 도움이 된다. 그저 두 사회의 우열을 가리지 않고 다름을 인정할 뿐. 마음과 눈을 열어두고 배우고 싶은 것은 배우되 굳이 나 자신을 뿌리부터 바꾸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다른 두 세계의 만남
하지만 내가 스스로 선택한 유일한 가족은 바로 독일 사람. 한국과 독일이 다른 만큼 다르게 자란 두 사람이 만나 가족이 되었다. 인구가 만 오천명이 채 안 되는 뮌헨 근교에서 들판을 뛰놀고 호수에서 수영을 했던 남편은 10대 중반이 되어서야 기차를 타고 근처 소도시에 놀러 갔다. 내가 나의 초등학교 시절 추억이 있는 곳이라며 코엑스몰을 보여줬을 때 그는 우리의 어린 시절이 얼마나 달랐는지 비로소 느꼈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주말은 어땠을까. 나는 보통 누군가를 만나러 번화가로 나가서 새로운 음식점과 카페, 술집을 가거나 전시회나 영화, 재미있는 행사를 찾아가기도 했다. 주말을 이용한 해외여행도 자주 했다. 남편은? 가족과 함께 밥을 먹고, 동네를 산책하고, 친구네 집에 놀러 가고, 얼마 안 걸리는 알프스 쪽에 가서 하이킹을 하곤 했다. 밤이 밝은 서울과 달리 독일 소도시의 일요일이란 개미새끼 하나 없는 진정한 안식일이다. 처음 남편의 집을 방문했을 때 나는 집 밖이 이렇게 조용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나에게 그렇게 소음이 없는 환경은 독서실 뿐이었다.
어디에서 살까
같은 점보다 다른 점이 훨씬 많은 우리는 한국식도 독일식도 아닌, 우리만의 생활방식을 만들어 나가기로 했다. 부부로 함께하는 삶을 독일에서 시작하기로 한 것이 그 첫걸음이다. 한국에서의 직장 생활을 이미 경험해 본 나는 그렇게 좋다는 유럽의 일하는 문화가 궁금해 꼭 유럽에서 일을 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독일, 그중에서도 남편의 고향과도 가깝고 패션/경영 전공의 나와 산업공학 전공의 남편이 둘 다 괜찮은 일을 찾을 수 있는 도시인 뮌헨이 우리의 첫 보금자리가 되었다.
무엇을 먹을까
몸뚱이는 독일에 있지만 속은 한국이나 다름없다. 남편은 한국과 중국에서 뒤늦게 미각의 지평을 넓히고 긍정적인 충격에 휩싸였다. 끝도 없이 나오는 새로운 음식의 세계에서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한 그와 향신료 없는 음식은 심심해서 못 먹는 나는 그래서 삼시 세 끼의 70%는 한식으로 먹는다. 나머지는 가끔씩 도전해보는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태국, 인도음식 등이고 독일식 또는 유럽식은 가끔 외식할 때만 먹는다. 족발이나 곱창전골 등등 뮌헨에서 구하기 힘든 한국 음식을 먹기 위해 프랑크푸르트 근교로 휴가를 가자는 제안도 남편이 했다. 아, 그리고 우리는 집에서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쓴다. 그래서 가끔 통화를 하는 남편을 보면 새삼 독일어가 모국어인 독일인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밖에서 보면 독일에 있지만 그곳에서 우리만의 한국 집을 만든 것이다.
어떤 주말을 보낼까
주말을 보내는 방식은 나의 취향과 그의 취향이 아주 잘 섞인 예이다. 큰 활동을 계획하지 않은 주말에는 내가 짬짬이 찾아 놓은 새로운 카페를 탐방하러 간다. 너무 멀지 않으면 산책을 겸해 걸어가는데, 이 주말 산책이 바로 남편이 원하는 것이다. 나는 물론 단 5분이라도 대중교통을 타고 가는 것을 선호하지만 말이다. 카페에서 머무르며 우리끼리 다른 카페들과 비교분석을 하고 엉터리 평점을 내리기도 한다. 번화가로 나가서 나는 유명 브랜드들의 쇼윈도를, 그는 대로를 지나다니는 멋진 스포츠카들을 구경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박물관이나 미술관도 자주 가는데, 나는 전시 주제를 보고 갈 곳을 고르는 반면 지도 덕후인 남편은 박물관의 위치를 보고 안 가본 지역의 전시를 고른다. 둘 다 관심사가 얕고 넓어 어느 전시, 어느 박물관이어도 상관없지만, 가끔은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한 번 복식 관련 전시에 갔으면 다음에는 철도박물관에 가는 식으로 계획을 한다. 물론 박물관에 가는 활동도 전후로 산책을 겸한다.
가장 도전적인 활동은 바로 뮌헨 근교로 가는 하이킹이다. 운전을 좋아하는 남편은 날이 좋으면 알프스를 향해 차를 몰고 가서 산을 느끼고 싶어 한다. 차를 5분만 타고 바로 토를 했던 긴 멀미의 역사를 갖고 있는 나는 드라이브 자체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산을 바라보는 것은 좋지만 하이킹은 경험이 많지 않으며 설상가상으로 독일에 많은 한 자작나무에 심한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주변의 한국 친구들이 가장 의아해하는 부분도 바로 이것이다. 내가 주말에 산을 가서 하이킹을 하다니? 하지만 우리는 이 또한 타협점을 찾았다.
하이킹을 가고 싶은 것은 100% 남편이기 때문에 제안은 남편이 한다. 되도록이면 차로 두 시간이 넘지 않는 곳으로 한다. 남편이 아우토반 드라이브를 즐기는 동안 나는 자동차 노래방을 개시한다. 추억의 한국 노래를 잔뜩 담아둔 플레이리스트를 틀고 노래방에 못 가는 한을 차 안에서 푼다. 드라이브가 끝나는 첫 도착지는 산 근처에 있는 맛집이다. 나의 맛집 탐방의 범위를 조금 넓힌 것이다. 우리는 "금강산도 식후경" 룰을 잘 지키는데, 덕분에 미처 몰랐던 작은 동네의 특산물이나 지역 양조장에서 만든 맥주를 발견할 때도 많다. 배를 채운 후에는 정상이 아닌 Alm을 목표로 하이킹을 시작한다. Alm은 알프스의 고원 목장으로, 이곳에는 목을 축이고 배를 채울 수 있는 주전부리를 팔거나 본격 음식점이 있기도 하다. 산 아래 맛집에서 배를 채운 뒤 고원 목장에서 후식을 먹는 것, 서울에서 하던 맛집 탐방이 독일 알프스로 옮겨 온 것이다.
어디에서든 나답게 살아가기
나라는 사람의 성격이나 취향을 한 단어로 단정 지어 말할 수 없듯이, 한 나라의 문화나 생활도 마찬가지이다. 국적과 성장 배경은 분명 한 사람의 큰 부분에 영향을 미치지만, 그것만으로도 여러 사람을 한 그룹 안으로 묶어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독일의 생필품 물가가 싸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닐 수도 있고, 노잼으로 유명한 이곳에서 한국에서보다도 재미있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꼭 한국 여자와 독일 남자가 아니었어도, 독일에서 살지 않았어도, 우리는 우리만의 고유한 생활방식을 찾아내 우리답게, 즐겁게 살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