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의 사투리

by mig

지난 주말에는 근처 도시에 가는 겸 그곳에 사시는 시외삼촌을 뵈고 왔다. 뮌헨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는 곳에 사시는 외삼촌을 우리는 "케디"라고 부른다. 루마니아에 계신 외할머니의 오라버니분, 즉 외종조부 역시 우리는 "케디"라고 부른다. 이 둘을 구분하기 위해 루마니아 케디는 "후버 케디"라고 부른다. 정확히 어느 언어인지는 모르지만 "케디"는 "삼촌"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영어의 "엉클 후버"가 아닌 우리말처럼 이름을 먼저 쓰는 것은 헝가리어의 영향이다. 헝가리어에서는 우리처럼 항상 성을 먼저 쓰고, 그다음에 이름을 쓴다.


케디의 이름은 루마니아어.

케디의 성은 헝가리어.

케디의 모국어는 독일어.


케디는

나에게는 영어로,

아들과는 루마니아어로,

시부모님을 포함한 본인의 가족과는 독일어와 헝가리어로 말한다.

구 공산국이었던 루마니아에서 자라면서 학교에서는 러시아어를 배웠고,

국경이 가까웠던, 더 재미난 음악을 틀어주던 세르비아의 라디오를 들었다.


물론 여기에 프랑스어를 더하고 한국어까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어머님도 있지만, 루마니아에 계신 외할머니는 무심하게 3개 국어 방송을 넘나들며 TV 채널을 돌리시지만, 케디 역시 내 눈에는 흥미로운 사람이다.


케디는 루마니아인 신분으로, 헝가리어 성으로 불리면서, 독일에서 독일어로 일을 한다. (물론 루마니아도 유럽 연합국이기 때문에 따로 "외국인 취급"을 받는 일은 없다.) 독일어가 모국어고, 조상들(?)의 나라이니까.


외할머니의 독일어는 현재 표준 독일어와는 조금 다르다. 조금 더 오스트리아어에 가까운 독일어를 하시는데, 아마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대의 영향일 것이라고 우리는 추측한다. 외가 가족들이 지금 살고 있는 티미쇼아라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땅이었고, 외할머니는 그 제국이 해체된 겨우 몇 년 후에 태어나셨다.


나는 물론 아직도 독일어를 잘은 모르지만, 바이에른 사투리 또는 오스트리아에서 사용하는 독일어가 가끔 헝가리어와 비슷하게 들린다는 것 정도는 알아챈다. 대표적인 것은 'a'를 '어'로 발음하는 것. 케디는 나에게 보통 영어로 말을 하시지만, 이번에는 남편과 자동차 관련해서 할 이야기가 많아 케디의 독일어를 오래 들을 수 있었다.


여느 때처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독일어로 쏟아지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 보니, 케디의 억양이랄까, 말투랄까, 발음이랄까, 그의 멜로디가 매우 흥미롭다는 것을 발견했다.


교포의 사투리(?)라고 할까.

루마니아에 남아서 살고 있는 독일 이민자 후손들의 억양에, 바이에른 사투리 조금, 아우크스부르크 인근에서 쓰는 슈바벤 사투리 조금이 섞여 있는 독일어였다.



지금은 웃으면서 말하지만, 이 "억양", "사투리"라는 것은 차별을 낳기도 한다.


시어머니 이야기로 와보자.

어머님은 루마니아에서부터 독일 유치원과 독일 학교를 다니셨다. 독일인 정체성이 강했던 것이다. 어려서부터 독일에서 먼 친척이 가져다주는 독일의 물건들을 보며 어른이 되면 꼭 독일에 가서 살겠다고 다짐했다. 루마니아의 독재 정권이 무너지고, 소련이 무너지고, 국경이 열리면서 어머님은 드디어 합법적인 방법으로 독일에 와서 국적 회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와 같은 말을 쓰고, 나와 비슷하게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것도 꿈에 그리던 독일에서 살 수 있다는 생각에 20대의 어머님은 흥분으로 가득 찼다. (독일인 및 헝가리인들은 루마니아인들과 종교부터 달라 항상 소수자임을 느끼며 사셨다고 한다. 헝가리인의 경우는 인종차별부터 행정적 차별까지 받았다고.)


하지만 독일 정착 후, 어머님은 이곳 사람들의 독일어와 자신의 독일어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 억양을 들었을 때, 본인의 겉모습과 상관없이 어떠한 선입견을 갖게 되는지도. 그 후로 몇 년 동안이나 어머니는 집 밖이나 공공장소에서 독일어로 말하는 것을 피했다. 본인이 평생 써왔던 모국어인데도 말이다.


비슷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내가 구독하는 한 언어 관련 유튜브 채널에서였다. 동북아시아권의 언어를 중심으로, 각 언어를 비교하거나 같은 언어 안의 사투리를 알려주기도 하는 재미있는 채널이었다. 운영자는 중국에 사는 조선족들의 한국어 관련 영상을 기획하고 있었다. 하지만 끝내 콘텐츠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섭외할 수 있는 조선족 출연자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큰 이유는 바로 "한국 사람들이 조선족의 억양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고 있다."였다.


내가 나고 자라면서 듣고 사용하는 말. 나에게는 자연스러운 그 말의 리듬이 다수에게 익숙지 않다거나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어떤 시선을 받게 되는지를 알게 되는 심정. 사실 나는 직접 겪어보지 않아 잘 모른다.


케디에게는 개인적으로 나에게 케디의 독일어가 흥미롭고, 또 매력적이게 들린다는 말을 직접 하지는 않았다. 그 "다름"을 굳이 내가 또 손으로 집어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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