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독일에 있는 집처럼 이곳에 있는 우리 가족에게도 크리스마스는 최대 명절이다. 마치 우리네 추석이나 설날처럼, 성스러운 저녁 (Heiliger Abend)이라 부르는 크리스마스이브에 시댁으로 가서 먹고 자기 마라톤을 시작한다.
우리의 크리스마스이브 음식은 김치찌개와 거의 비슷한 양배추 수프(Korhelyleves)다. 러시아에서처럼 스메타나 비슷한 이름의 사워크림을 곁들여 먹기도 한다. 헝가리에서 즐겨 먹는 음식이지만 원래는 슬로바키아 음식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독일에서도 슬로바키아 이름인 Kapustnica라고 부른다.
헝가리 본토에서는 크리스마스에 보통 비슷하게 매콤한 수프에 민물고기를 넣은 생선 수프(Halászlé)를 먹는다고. 폴란드 혼혈인 독일 친구네 역시 폴란드식으로 하얀 생선을 먹는다고 했고, 나폴리 출신 회사 동료 역시 크리스마스에는 꼭 생선을 먹는다고 했다. 생선에 어떤 의미가 있기는 한가보다. 중국에서는 설날에 有头有尾 (머리와 꼬리가 있다)라고 해서 그 시기에는 시장에서 손질하지 않은 생선, 그리고 잎과 뿌리가 다 달려있는 채소를 팔던 생각이 났다.
다시 우리의 이브 음식인 찌개로 돌아와 보자. 처음 한국에 갔을 때 야심 차게 남편을 나의 최애 김치찌개 집에 데려갔지만 그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새로운 식재료나 맛을 시도해보는 것을 좋아하는 그에게 김치찌개는 오히려 집밥에 가까웠던 것이다. 시부모님이 추석에 한국에 방문하셨을 때는 갈비찜을 보고 굴라쉬의 달달한 버전 같다며 매우 좋아하셨다. (그리고 고깃집 된장찌개도.)
시어머님 역시 새로운 음식이나 식재료를 시도하는 걸 좋아하시기 때문에 중국과 한국 방문에서 음식 관련 질문을 많이 하셨었다. 된장찌개에 빠지신 이후 나에게 부탁해 다 같이 된장 만드는 영상을 시청하기도 했고, 생일 선물로는 갖고 싶으시다고 했던 참기름과 간장을 선물했다.
이번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에는 오징어순대와 비슷한 음식을 토마토와 정어리, 케이퍼 등을 곁들여 이탈리아식 소스로 만드셨다. 남편의 최애 한국 음식이 속초 오징어순대이기 때문에 이분은 유난히 더 신이 났다.
크리스마스 아침 식사는 매번 같다. 루마니아 음식인 Ovă Umplute, 다양한 파테로 속을 채운 삶은 계란이다. 파낸 노른자로는 마요네즈 같은 소스를 만들어 함께 먹는다. 이번에는 케이퍼와 함께 말아놓은 정어리도 같이 먹었다. Ovă Umplute는 크리스마스 음식이라기보다는 특별한 날에 먹는 손이 좀 많이 가는 음식으로 남편의 설명에 따르면 잡채와 비슷한 위치의 음식이라고 한다.
크리스마스 당일 점심은 양배추 찌개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Töltött Káposzta, 양배추 롤이다. 나는 폴란드 음식인 줄 알고 있었는데, 동유럽 나라들에서 공통적으로 먹는단다. 한국인 입맛에도 역시, 왠지 익숙한 맛이다. 여기에 쓰는 양배추는 주기적으로 장을 보시는 러시아 슈퍼에서 산 루마니아산 양배추라고 한다. 일반 독일 슈퍼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얇고 크기도 양배추 롤에 적당하다고.
애피타이저로 먹은 수프는 소고기 뭇국과 아주 비슷한데, 무 대신 당근과 셀러리 등등을 넣었다. 이 외에도 루마니아는 마늘과 장아찌류를 많이 먹고, 구야시와 파프리카의 나라 헝가리 역시 각종 절인 음식과 매콤한 찌개류를 먹으니 가족들이 서로의 음식에 크게 낯설어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회사 동료들과 크리스마스 음식 이야기를 할 때, 많은 동료들이 이브 저녁으로 소세지와 감자를 먹는다고 해서 놀랐었다. 일부는 라클렛을 먹는다고 했고, 그나마 프랑스계 독일인 동료네는 미리 프랑스 슈퍼에서 장을 잔뜩 본 뒤 푸아그라와 굴을 위주로 먹는다고 했다. 그리고 물론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이 휴일을 보낸다.
연휴 시작 전 회사 및 협력 브랜드 관계자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인사말은 frohe Weihnachten이 아닌 frohe Feiertage, happy holidays였다. 안전하게 모두에게 같은 인사말을 건넨 것인지, 존재만으로도 튀는 아시아인인 나의 문화권에서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Feiertage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배려가 느껴져서 좋았다. 쥐트도이체차이퉁의 뮌헨 지부 공식 인스타그램 역시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모든 분들께, ein frohes Fest und erholsame Feiertage!'라는 인사말을 올렸다. 특히나 독일 내에서 종교색이 가장 강한 바이에른의 주도인 뮌헨 지부에서 이런 공식 포스트를 올렸다는 점이 특히 더 의미 있는 메시지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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