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세계일주 중입니다> 프롤로그. 그날의 기억

by 미고

어린 시절, 나는 엄마 아빠와 함께 여행을 한 기억이 없다. 다만 가기로 했던 기억은 있다. 11살, 여름 방학.

할머니와 할아버지,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과 함께 바닷가로 휴가를 떠나기 하루 전날이었다. 밖에서 놀다 들어온 건지, 학원을 다녀온 건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내가 살던 집은 상가주택이었고, 1층엔 인형 뽑기 가게가 있었다. 그 위층이 우리 집이었다. 계단을 올라가 구리색 화려한 무늬의 철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입구에 바로 안방이 있었다.


그날따라 안방 문이 활짝 열려있었고 차분한 느낌이 들었다. 부모님은 맞벌이였기 때문에 우리 집은 항상 어수선했다. 엄마의 화장대는 화장품만 있던 게 아니라 가끔 굴러다니는 동전들이 많았던 기억이 있다. 그걸 모아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거나 심지어 친구랑 롯데월드 수영장에 가기도 했다.


그날은 동전을 모으기 위해 안방에 들어간 건 아니었다. 뭔지 모를 차분함에 이끌려 방안에 들어갔다. 가장 먼저 정리된 화장대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가 쓰던 스킨, 로션, 엄마 냄새로 기억되는 지독한 향수는 온 데 간 데 없고 아빠가 쓰던 투박한 스킨, 로션만 남았다. ‘엄마가 벌써 여행 짐을 꾸린 걸까?’

제발 그런 거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엄마의 옷장을 열었다.


보통은 2박 3일로 여름 바닷가를 가게 되면, 속옷 몇 가지와 편하게 입을 수 있는 티셔츠와 반바지, 수영복, 바닷바람을 막아줄 간단하게 걸칠 카디건 정도만 챙기면 된다. 11살인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의 옷장은 텅 비어 있었다. 회사에 입고 가던 정장은 물론 겨울 코트까지 몽땅 사라졌다. 나쁜 상상이 들기 시작하면서 가슴이 쿵쾅거렸다.


거실로 나와 부엌까지 둘러봤다. 싱크대에 남아있는 물기, 깨끗하게 씻어진 그릇들, 엄마가 분명 방금 전까지 집에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어…” 다시 걸어봐도 신호음만 길게 이어졌다. 이번엔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는 우리 집에서 1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살았다.


“할머니, 엄마 물건이 모두 사라졌어.”


할머니는 내 전화를 받고 한 걸음에 달려오셨다. 할머니를 기다리는 10분의 시간이 10시간처럼 느껴졌다. 집에 도착한 할머니는 말없이 방 안을 둘러보았다. 점점 표정이 굳어지는 할머니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의 상상이 곧 현실이 되었음을. 그날, 엄마는 아주 긴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는 몰랐다. 그녀의 여행이 나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을 거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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