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hyang Eun Nov 06. 2018

그 사이의 일 - 하!

소리가 만드는 에너지

구민체육센터 스쿼시 강좌의 정원은 6명이다. 화목 초급반에 있다가 월수금 중급반으로 옮긴 게 올 3월이었고 8월 정도까진 구성원이 변하지 않았다. 끝나고 간간이 술도 마시며 친해졌는데 가을로 접어들면서 두 명이 떠났다. 프로그래머인 한 명은 회사일로 스쿼시를 아예 관뒀고, 식품회사 마케터인 또 한 명은 주3회는 역시 무리라며 다시 화목반으로 돌아갔다.


이후로는 나머지 두 자리를 놓고 여러 명이 들고 났다. 무리해서 스쿼시를 하다가 피로골절로 6년이나 쉬어야 했던 한 사람은 한 달만에 다시 증상이 나타나 다시 관둬야 했고, 첫 수업 후 모습을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오가는 와중에 나를 포함해 4명은 변함없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중 하나는 월수금반에서 처음 만났고 나머지 둘은 화목번부터 함께 스쿼시를 하다가 월수금반으로 함께 이동했다.


처음 거의 일 년 가까이는 서로 말도 하지 않고 스쿼시만 쳤는데 이젠 꽤 많이 친해졌다. 서로의 공도 알고, 서로의 폼도 알고, 서로의 성장도 지켜봤고, 물론 서로의 취한 모습도 보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친밀감이 있다. 그리고 모두가 여전히 성장 중이기 때문에 함께 스쿼시를 치면 많이 웃는다. 의도한 대로 공을 보내지 못해 미안해서 웃고, 가끔은 창피하거나 민망해서 웃고, 또 상대의 애쓰는 모습이 귀여워서 웃고, 어떨 땐 정말 웃겨서 웃기도 한다.


그래서 웬만하면, 스쿼시 치러 가기 전의 기분이 어땠든지간에, 스쿼시를 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요 근래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겹쳐서 일어나고 회사일도 좀 힘들어서, 스쿼시를 쳐도 예전만큼 즐겁지 않았다. 아마 이것마저 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나는 더욱 바닥을 쳤겠지만, 스쿼시를 치는 데서 오는 즐거움도 오롯이 즐기지 못했다.


오늘도 비슷했다. 공을 치기 위해 달리면 아마도 발바닥에서부터 서서히 에너지가 끌어올라 결국은 정수리까지 닿고, 그랬을 때 완전한 활기를 느꼈던 것 같은데 요즘은 기껏해야 허리 정도까지 올라오고 마는 날이 많았다. 그러다 수업 후반에 한 사람이, 서브를 넣기 전에 “하!” 하고 기합을 넣기 시작했고 그게 재밌어서 나도 따라했다. 서브를 넣을 때만 “하!” 하는 것이 아니라 공을 받을 때마다 “하!”, “하!”, “하!.”


그랬더니 마법처럼 기분이 좋아지고 웃음이 나고 공을 쫓아가는 움직임도 가벼워졌다. 샤라포바의 괴성이 샤라포바에게 주었을 어떤 에너지가 바로 그런 것 아니었을까. 의도한 것이 아니겠지만 우리가 반복한 “하!”는 혼자서는 어떤 기합이나 감탄사일 뿐이었지만 반복하면 웃음소리가 됐다. 나의 “하!”와 상대의 “하!”가 만나면 함께 웃는 소리가 됐고.


아마 혼자 “하!” 하고 아무리 소리쳐봐야 둘이서 공을 주고 받으며 함께 주고 받은 “하!”만큼 유쾌하진 않았을 거다. 에너지가 넘쳐서 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소리내다 보니 발바닥에만 고여 있던 에너지가 배꼽, 가슴을 지나 정수리까 차오를 수 있었던 것 같다. 세상에는 그런 힘을 가진 사람이 꼭 있고, 살다 보면 한번씩은 꼭 만나게 되는 것 같다. 고맙다.

매거진의 이전글 밤의 일 - 아이를 키우는 건 시를 쓰는 일이겠구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