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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hyang Eun Dec 24. 2018

2018년 12월 1일 토요일의 일

도착한 지 거의 한 달 된 택배를 오늘에서야 받았다

2018 12 1일 토요일지


도착한 지 거의 한 달 된 택배를 오늘에서야 받았다. 


이사 오기 전 텀블벅에서 비슷한 시기에 후원한 프로젝트가 세 개 있었다. 리워드가 도착할 즈음에는 새로운 집에 살고 있을 예정이어서 계약서에 적었던 주소를 기억을 더듬어 썼는데, 숫자 하나를 잘못 썼던 모양이다. 계약서를 찾아보는 게 귀찮아서 기억을 더듬었던 게 실수였고(더듬는 건 대체로 이렇게 결과가 별로 좋지 않다), 그 덕에 세 번 모두 주소를 일관되게 잘못 썼다.


번지 숫자 2를 1로 쓰는 실수였다. 이상하게 나는 일의 자리에 오는 1과 2를 자리를 종종 혼동한다. 전에 살던 호수가 302호였고 엄마 집 호수는 301호인데 엄마에게 뭘 보낼 때도 1을 2로 잘못 적어서 보낸 적이 있었다. 삼백일, 삼백이, 삼백일호, 삼백이호…  발음해보면, 헷갈리는 이유가 짐작된다. 텍스트는 그것을 기억하려고 할 때 소리에 의존하게 되는데, 일을 조금만 힘없이 발음해도 (이로, 이오…)이처럼 들리기 때문에(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혼동하곤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번 혼동은 차원이 달랐다. 301호에 갈 걸 302호로 적어 보냈을 때는 거의 아무 문제없이 잘 도착했다. 엄마가 사는 빌라는 문과 문이 바로 마주 보고 있다. '잘못' 적은 주소로 택배기사가 '제대로' 배송해도, 302호 사는 사람은 택배를 잘못 놓고 갔다고 생각해서 자기 문 앞에 더 가까이 놓인 택배를 슬쩍 밀어 맞은편 문 앞에 더 가깝도록 보내버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에 내가 한 실수는 번지를 잘못 적은 것이고, 잘못 도착한 곳은 바로 옆이긴 해도 아예 다른 건물이었다.


택배가 도착했다는 문자만 도착하고, 집 앞에 와보니 정작 택배는 도착해있질 않아서 주소를 잘못 적었다는 걸 직관적으로 깨달았다. 주소를 검색해 보니 다행히 바로 옆집이어서 곧바로 갔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1층과 2층 계단 사이에 철문이 있었는데 굳게 잠겨 있었고 그 안에 내 것으로 짐작되는 택배 상자가 놓여 있었던 거다. 택배기사는 과연 어떻게 닫힌 철문 안에 물건을 넣은 걸까 궁금했지만, 택배기사가 어떻게 넣었든 내가 꺼낼 방법은 없었다. 계단 사이 공간으로 팔은 들어갔지만 물건까지 닿지 않았고, 만약 닿았다고 해도 택배 상자가 빠져나올 만큼 큰 구멍은 없었다. 하는 수없이 쪽지를 남겼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주소를 헷갈렸다, 번거롭게 해서 죄송하다, 철문 밖에 꺼내 두시면 찾아가겠다, 그리고 전화번호.


다음날 아침 일찍, 아마도 오전 7시 40분쯤에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받으니, 옆집 할머니였고 택배를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그냥 철문 밖 계단에 두면 내가 찾아올 텐데, 조금 귀찮다는 마음으로, 하지만 다행이라는 생각에, 잠결에 나가 택배를 받았다. 꽤 이른 시간인데도 짙은 화장을 곱게 한 할머니는 쉽게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마른 몸에 딱 달라붙는 화려한 붉은색 옷을 입은 할머니는 내가 언제 이사 왔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야기를 하면서 눈으로는 빠르게 집안을 훑는 게 느껴졌다. 어색한 대화를 마치기 위해 쪽지에 적었던 내용이지만 한 번 더 사정을 설명하며 죄송하다 사과하고, 감사하다 인사했다.


그런데 하루이틀 후 또 아침 일찍 전화가 왔다. 주소를 잘못 적은 택배가 또 있었던 거다. 할머니는 또다시 택배를 가져다주면서 처음보다 조금 더 길게 잔소리를 했다. 잠결이라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여전히 화려한 붉은색 계통(그 날의 옷과 다른 옷이라는 것만은 분명했다)의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고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두 개가 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젠 정말 그럴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시 한번 더 사정을 설명하고 이제는 '정말로' 그런 일 없을 거라고 단호하게 얘기하고 문을 닫았다. 


약 한 달 뒤, 꽤 오래전에 후원한 한 프로젝트의 리워드를 문 앞에 뒀다는 택배사의 문자를 받았다. 집에 도착해 문 앞에 택배가 없는 걸 알고 그때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할머니와는 출근길에 한 번 더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전에 살던 집 할머니(일본 사는 집주인의 엄마이자 실거주자)와 통화 중이었다. 통화를 하고 있었다기보다는 싸우고 있었는데 계약만료일을 며칠 앞두고 그제야 전세보증금 제때 돌려주기가 어렵게 됐다며 두 달만 여유를 달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자꾸 했기 때문이었다. 그 전화는 전날 저녁부터 계속됐는데, 날짜를 미뤄달라고 사정하다가 내가 그렇게는 안 되겠다고 하면 끊어버리고 또 전화하고 또 끊어버리는 식의 통화가 반복되는 중이었다. 그래서 그날 아침 나는 더욱더 화가 나 있었고, 절대로 미뤄줄 수 없다며 화를 내고 있었는데 하필 그때 옆집 할머니와 마주쳤던 거였다. 


옆집 할머니는, 내가 통화하고 있는 걸 뻔히 보면서도 말을 걸려고 했다. 나는 통화 중이었고, 화가 나 있었고, 이미 할머니와는 눈인사를 하고 스쳐 지나온 터였기 때문에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전화에다 화내면서 할머니에게 대답까지 하기는 힘들었다. 그랬더니 옆집 할머니는 가던 길을 되돌아와 통화 중인 나를 붙잡고, 자기 집으로 택배 오는 일이 더는 없도록 해달라고 했다. 나는 다급하게, 그러나 퉁명스럽게 이제 그런 일 없을 거라고 말하고 전화기 너머 할머니에게 다시 화를 냈다.


문 앞에 택배가 없다는 걸 확인한 순간, 그 택배의 행방을 직관적으로 깨닫는 순간, 그날 아침의 일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옆집에 직접 연락하기보다 택배기사님에게 도움을 청하는 방법을 택했다. 주소를 잘못 적어 택배가 옆집으로 간 것 같은데 철문으로 잠겨 있어 가져올 수가 없다고, 죄송하지만 회수해서 가져다주실 수 없겠느냐고. 다행히도 택배기사는 내 잘못을 탓하지 않고 그러겠노라고 답을 해주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연락이 없었다. 다시 연락해보니 할머니가 밤늦게 집에 돌아오기 때문에 연락하기 힘들다고 조금 더 기다리라고 했다. 기약 없는 기다림은 그런 식으로 삼 주 넘게 이어졌고, 기다림에 지친 나는 기사님에게 또 보챘다.


그 후로도 할머니에게 연락이 닿거나, 택배를 가져갈 수 있게 철문 밖에 내놓아 달라고 전달하는 데 애를 먹었던 모양이다. 다시 일주일이 넘게 지나고 달이 바뀐 후에야, 오늘에서야 택배 아저씨가 할머니에게서 직접 택배를 받아다 주셨다. 그러면서 전해준 이야기는 이러했다.


옆집 할머니는 처음 두 번은, 실수로 잘못 배달했다고 생각해서 손수 가져다주기까지 했지만, 이사한 지 한 달 넘어서까지 택배가 잘못 오자, 뭔가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는 단순히 그 할머니를 다시 만나는 게 불편해서 택배기사님이 가져다주시기만을 기다렸는데, 처음처럼 쪽지를 붙여놓거나 전화번호를 남겨놓지 않는 것도 의심을 더욱 키운 계기가 됐던 모양이었다. 집으로 직접 받아선 곤란한 물건을 옆집으로 먼저 배달한 다음, 시차를 두고 물건을 찾으려던 의도쯤으로 해석했던 것 같다. 그래서 할머니 나름대로, 상자 안에 이상하거나 불법적인 물건이 든 건 아닌지 (대체 어떤?) 조사를 했던 것 같다고 택배기사님이 전해주셨다. 만약 한 번 더 옆집으로 택배가 간다면 그때는 정말 돌려받기 힘들 거라는 조언과 함께.


그렇게 실수한 이후로 나는 새주소만 쓴다. 새주소에는 1이나 2 같은 숫자가 들어가지 않는다. 내가 한 번 더 주소를 잘못 쓰는 일이, 만에 하나, 한 번 더 생긴다면, 그때 그 택배 상자 속 물건은 내 것이 될 수 없을 것이다. 택배는 영원히 도착하지 못할 것이고, 도착하지 못하는 건 조금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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