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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燦爛) in Virgen del Camino

by 드작 Mulgogi

CAMINO DE SANTIAGO

El Burgo Ranero ~ Virgen del Camino

+18~19 Day / 2016.07.22~ 07.23

: 44.7km 중 (18.5km by bus) 26.20km(Iphone record : 24.50km)



아침. El Burgo Raenro를 출발하며.


떠오르는 붉은 태양. 아직 날이 환히 밝지 않아 달이 함께 공존(共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태양과 달 아래 펼쳐진 아름다운 대지의 풍경을. 숨 쉴 때마다 공기와 함께 들여 마셨다. Reliegos를 거쳐 Mansilla까지는 20km가량 크리스티나와 함께 걸었다. 중간중간 베드로와 휘를 만났는데, 휘의 발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며칠 전, 나만 떨어뜨려놓고 Sahagun 까지 강행군을 펼치더니 정강이에 무리가 온 모양이다. 그런 휘와 크리스티나와 나는 더 이상 무리하지 않기로 하고, 레온까지 18.5km 구간은 버스를 타고 점프하기로 했다. 베드로는 자신과 한 약속 때문인지 레온까지 걸어서 가겠다고 했다.

버스를 타고 정오쯤 레온에 도착했다. 산티아고의 길이 순례를 위한 길이기에 넉넉하지 않은 잠자리와 음식에도 불평 없이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베드 버그로 인해 숙소만큼은 좀 더 비용을 지불하고도 깨끗한 곳에 머물고 싶었다. 그래서 깨끗하면서 저렴한 숙소를 고심하여 고르기 시작했다.


큰 도시인 레온에 도착했을 때, 깨끗한 호스텔은 이미 순례자로 꽉 차 자리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나는 레온에서 8km 떨어진 Virgin del Camino에 있는 호텔 빌로 파마를 어플로 저렴하게 예약했다. 저렴하다고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순례길의 알베르게 비용이 Eur 10인데 반해 싱글룸 Eur 35 쯤은 지불해야 했다. 예산에서 많이 벗어나지만, 이게 다 베드 버그 탓이라 어쩔 수 없었다. 휘는 베드로와 함께 머물 레온에 있는 트윈룸 호텔로 예약했고, 크리스티나는 레온에 있는 알베르게에 머물기로 했다. 각자 자신의 예산과 계획대로 숙소를 달리 잡은 것이다.


레온에서 버스로 20분 거리의 Virgen del Camino에 도착하니 호텔 스태프 아주머니가 아주 친절하다. 컵라면에 넣을 뜨거운 물도 데워 주시고, 포크도 빌려주시고. 이 호텔에 이틀간 머물며, 너무 친절하셔서 이름을 묻고 인사라도 다정하게 건네고 싶었는데. 떠나는 날 아주머니가 바빠 보여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불볕더위가 다시 시작되어 양말과 등산화를 꽉 조여 신은 발목에 땀띠가 났다. 방에 냉장고는 없어 호텔 일 층에 있는 바에 물을 얼려달라고 맡기고, 얼음을 얻어 얼음찜질로 땀띠를 죽였다. 오랜만에 혼자 푹 잘 수 있어서, 휴식을 취할 수 있어 감사했다.


오늘까지 이 곳에 머물며 쉴 생각이다.


호텔 바에서 커피와 빵으로 간단한 아침 식사 후 내일 이동할 경로도 찾을 겸 산책을 하다 성당에 들어가 점심 미사를 드렸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햇볕 알레르기를 약하게 해 줄 긴 팔 스포츠 셔츠와 양말을 사고, 마트에 들러 먹을거리를 사서 돌아왔다. 이렇게 쉬기만 해도 하루가 참 짧다. 지금은 내일 일정과 숙소 문제. 그동안 알베르게에서 자느라 정리하지 못한 재정 계획과 남은 여행 일정을 정리 중이다. 역시, 예상치 못하게 훨씬 많이 쓰게 된 여행 경비가 문제다.

저녁이 되고 성당에 갈 시간이다. 순례길에서의 일정은 단순하다. 숙소에 도착해서 샤워와 빨래를 하고 점심을 먹고 나면 조금 쉬었다 마실 돌이를 하는 것이다. 이 마을 성당은 어떻게 생겼는지 둘러보고, 시간이 맞으면 미사를 드린다. Virgen del Camino는 마을 이름처럼 성모 마리아를 존경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었다. 스페인은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이 강하다. 산타마리아 성당도 많고, 이 Virgen del Camino 마을만 해도 이름부터 마리아를 기리고 있다.


오늘 이렇게 Virgen del Camino에 머물게 되면서, 성모 마리아에 대한 존경심에 내 속에 조금 더 자라나게 되었다. 나는 가톨릭이 아닌 채 산티아고 순례길에 올랐는데, 순례길을 걸으면 걸을수록 신의 존재를 믿게 된다. 신의 존재를 믿게 되면서, 성모 마리아의 존경심도 함께 자라나는 것이다. 한국에 돌아가면 꼭 세례를 받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성당 외경은 박물관을 연상케 하는 조각상이 멋있게 꾸며져 있었고, 내부에 들어가니 신부님께서 미사를 준비 중이시다. 미사를 드리고 동네를 한 바퀴 돌기로 한다. 평화로운 오후, Virgen del camino 마을에 내려앉은 햇볕과 그 사이 춤추는 나뭇잎. 찬란(燦爛)했다.


더 이상 매일 20km씩 불볕더위 아래 걷는 일이 힘들지 않았다. 그토록 날 괴롭히던 베드 버그의 흔적도 잦아들었다. 모든 것이 나뭇잎 사이로 비추는 햇볕처럼 찬란한 일상이 된 것이다. 일상은 소소하고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시간이 흘러 지나고 보면 일상처럼 소중한 것이 없으니. 이 아름다운 일상을 잘 적응해 온 나에게 대견하다 말해주고 싶다.

길을 걸으며 이렇듯 마음을 잡아끄는 마을이 있다. 사람이 그러하듯. 성모 마리아 마을. 미사를 마치고 저녁 산책하면서 어쩐지 이 동네가 좋아진다. 놀이터엔 아이들이 뛰어노는 가운데, 아빠 손을 잡고 깡충깡충 뛰는 여자 아이와 노부부가 걸음을 같이 한다. 이 마을의 느낌이 너무 좋아서 나중에 내가 쓰는 소설과 영화에 이 곳을 배경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저녁 미사를 드리고 (미사 집전은 점심때 내게 성당 안내서를 건네주신 신부님께서 하셨고) 스탬프를 받고 강복을 부탁드린 다른 신부님은 환 루이스 신부님이라고 한다. 마지막에 성당 문 닫으면서 환하게 인사해주시던. 그래서, 환 루이스 신부님이신가 하는 우스운 생각마저 든다. 마음에 깃든 평화와 감사하는 마음이 나도 이제 제법 순례자 같다.


이제, 내일부터는 정말 혼자 걷는다. 아자! 아자! 아마 내가 이 길을 걷고 싶었는지 되돌아 보면, 처음에는 여행자의 마음이었지만 중간중간 주님께서 나를 이 길로 이끌어주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오늘 찬란한 일상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준 사람책이 있다. 레온에서 크리스티나가 숙소에 체크 인 하는 동안 알베르게에서 만난 한국인 가족이다. 결혼 후 중국에서 14년을 사셨고, 이제 이직하며 한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게 되었는데. 그 사이 휴식 겸 산티아고의 순례길에 오게 되셨다고 한다. 같은 한국인이라지만, 처음 보는 우리에게 선뜻 샌드위치와 음료수, 그리고 시원한 수박을 건네며 같이 먹자고 해주셨다. 마침 배도 고프고 지친 참에 염치 불고하고 아주 맛있게 먹었다. 먹고 보답으로 캘리그래피를 써드렸는데. 다음에 다시 뵙게 되면 꼭 다시 뭔가 보답을 드려야지,라고 그 날 일기에 썼다. 그런데 인연이었던지. 이후에도 몇 번 더 만나게 된 민찬, 민 채네 가족.


한국에서 요즘 잘 못 느끼던 인심을 스페인에서는 살뜰히 느끼게 된다. 순례길이 끝나면 다시 머물고 싶은 마을 Virgen del camino에서의 하루가 진다. 마지막으로 미사 드린 후 신부님께 안수받고, 기념촬영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순례 길이 끝나면. 내게 도움 주었던 천사수녀님들의 산타마리아 성당, 자원봉사자였던 바드리(마드리드에서 선생님을 한다고 했는데)도 꼭 다시 만나고 싶다.


세상은 따뜻하고 살만하다 느끼며,

오늘도 부엔 카미노(Buen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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