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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둔형 최작가 Nov 26. 2021

겨울이 온다

2021. 짧은생각#2.(211125)

A Winter Morning after a Snowfall in Dalarna (1893), Anshelm Schultzberg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아니, 상식적으로 절대 용인될 수 없는 행위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를 보고 일탈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이들은 반사회적 행동이라 질타하기도 한다. 옳을까 그를까. 선일까. 혹은 악일까.


  나의 어린 시절 일탈은 주로 겨울이다. 내가 모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체득한 결과다. 여름엔 ‘물놀이’를 했고, 겨울만 되면 ‘눈싸움’을 했다. 같이 어울려 놀던 친구들이 진영을 나눠 싸우기 시작했다. 게다가 ‘눈싸움’에는 명확한 규칙이 정해져 있지도 않았다. 딱딱하게 눈을 뭉쳐서, 상대를 맞췄고, 내가 눈에 맞으면, 나를 맞춘 이에게 더 딱딱하게 굳혀진 눈 덩이를 던졌다. 쾌감. 규칙이나 심판 따윈 없고, 오로지 쾌감이라는 원초적인 목적의 충족을 위해 움직였다. 우리가 그토록 오랜 시간을 싸운 이유가 고작, 잠시 기분이 좋아지기 위해서였다니.      


  수년 만에 꽤나 많은 눈이 내렸던 작년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야근을 했고, 대부분의 직원이 퇴근한 뒤에야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눈 덮인 자동차는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긴급출동 서비스를 불렀다. 약 삼십 분에 가까웠을 무렵, 서비스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불만이 가득한 직원이 도착했다. 그는 무심하고, 귀찮다는 투로 보닛을 열었다. 나에게 시동을 걸어보라 했다. 다시 한 십 분 즈음이 지나서야 삼십 분은 시동을 걸어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따가 전화가 한 통 올 텐데, 꼭 ‘별 다섯 개짜리 서비스’였다고 평가해달라 했다. 예의 없고 자신의 이득만 취하려는 그의 태도는 영 불쾌했다. 그의 말, 약속처럼 몇 분 뒤에 전화가 걸려왔다.      


  나보다 조금 더 나이 들고, 나보다 조금 더 거칠었던, 불쾌한 그의 태도는 분명 겨울이란 계절에서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이었다. 단단하게 뭉쳐진, 얼음 같은 눈덩이를 던져야 마땅했지만, 난 무기력하게 별 다섯 개를 눌러줬다. 겨울은 항상 그대로인데, 나의 필요와 또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로 인해 투쟁으로 얻어지던 값진 '쾌감'이 공감을 매개로 한 '타협'으로 변해가고 있다.


  올해도 그런 겨울이 시작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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