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두 살짜리 아빠, 외가에 남겨지다
25화. 두 살짜리 아빠, 외가에 남겨지다
두 살짜리 아이.
그 아이가 바로 내 아빠였다.
아빠는 이 마을에서,
엄마도 아빠도 없이
외가에서 자랐다.
할아버지는 서울 장충동 집안의 둘째 아들이었고,
무남독녀 외할머니와 혼인을 맺으셨지만
아빠가 채 두 살이 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그 뒤 할머니는
서울 장충동의 집을 정리하고
친정으로 내려오셨다.
그것이 바로,
내가 지금 살아가는 이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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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자신이 쓰던 작은 방에서
아빠를 키우며 살고 싶으셨단다.
하지만 외할아버지,
그러니까 아빠의 외할아버지는
딸을 그대로 두지 않으셨다.
“아이를 우리가 키울 테니
너는 다시 혼처를 알아봐야 한다.”
그렇게 외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다시 시집보냈다.
가난하지만 가문이 좋은,
서울 변두리의 이 씨 집안 장남에게.
그쪽은 총각이었고
할머니는 과부였으니
그 결혼이 순탄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외할아버지는
딸의 재혼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서울 외곽에 집 한 채를 사주시고
혼처를 서둘러 성사시켰다.
그리고 아빠는,
두 살짜리 그 아이는
이곳에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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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들은 이야기 속의 할머니는
귀하고 고운 분이었다.
무남독녀로 태어나
외가에서는 늘 귀하게 자라셨고,
서울에서 혼례를 올릴 만큼
가문의 자부심도 크셨다.
하지만 그런 할머니가
자기 손으로 낳은 아이를 두고
타지로 떠났다는 건
분명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아빠는 어머니도 아버지도 없이,
그냥 ‘외손자’로
외가에서 자라야 했다.
외삼촌들과 외사촌들 틈에서,
누구의 자식도 아닌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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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면
서울에서 외사촌들이 줄줄이 내려왔고,
외가댁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고 한다.
현미네도 장손 가라
그 북적이는 풍경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하지만 그 중심에
내 아빠는 없었다.
그때의 아이,
외가에서 자란 두 살짜리 아빠는
그 누구보다 조용히
가장 많은 일을 도맡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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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종 상상해 본다.
누구도 손 내밀어주지 않던 밤,
아빠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누군가가 품어주지 않았을 그 시절,
두 살짜리 아빠는
어디에서 잠이 들었을까.
누구를 그리워하며 자라났을까.
엄마는 아빠를 말할 때면
늘 안타까운 눈빛을 하셨다.
“그래도… 고생 많이 했지.”
“그런데도 원망 한번 안 했어.”
정말 그랬다.
아빠는 단 한 번도
누구를 탓하거나
자신의 운명을 원망한 적이 없었다.
어쩌면
그 두 살짜리 아기의 마음속에
누군가를 기다리는
끝없는 기다림이 자리 잡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기다림을 평생 지고 살아오신 게
내 아빠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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