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시점
3화. 마을길을 함께 걷다
식사는 조용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어머니는 평소보다 한 가지 반찬을 더 올렸고, 아버지는 젓가락을 드는 속도가 느렸다.
정윤호는 밥 한 톨도 허투루 삼키지 않겠다는 듯 조심스럽게 숟가락을 들었고, 말보다는 고개를 더 자주 끄덕였다.
“맛이 어떠냐, 윤호 군.”
아버지의 물음에 그는 바로 젓가락을 놓고 대답했다.
“예, 아주 좋습니다. 어머니 손맛이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그래. 우리 집은 특별한 건 없지만, 마음 담아서 한다.”
그 대화 이후로는 다시 조용했다.
정숙은 밥숟갈을 들고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귀가 자꾸 붉어진다는 걸 느꼈다.
밥맛은 나쁘지 않았는데,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데는 괜히 시간이 오래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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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마친 뒤, 아버지가 말했다.
“정숙아, 윤호 군이 바람 좀 쐴 겸 마을 구경하고 싶다 하더구나.
지게 짐도 안 지게 생겼는데, 자네가 좀 안내해 줘라.”
“예, 아버지.”
둘은 나란히 마당을 나섰다.
윤호는 조심스레 몇 걸음 뒤따르다, 어느새 나란히 발을 맞추었다.
“아버님 말씀이 참 깊으시더군요.”
“말씀 많으신 편은 아니에요. 대신 마음은… 깊은 분이세요.”
윤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살짝 웃었다.
그 미소에는 장난기보단 따뜻함이 먼저 묻어 있었다.
“정숙 아가씨는… 마을에서 태어나셨나요?”
“예. 이 집에서 태어났고, 여태 여기서만 살았어요.”
“그럼 여기 골목도, 들길도 다 익숙하시겠네요.”
“눈 감고도 걸을 수 있어요. 어릴 땐 논두렁이 놀이터였으니까요.”
정숙은 말하고 나서 괜히 얼굴이 뜨거워졌다.
어린애 같아 보였나 싶어 옆을 힐끔 봤지만, 윤호는 오히려 진심 어린 눈빛으로 듣고 있었다.
“그런 곳에서 자란 분은 참 단단할 것 같습니다.
저는… 시멘트길 위에서만 커서 그런가, 늘 그리움 같은 게 있었거든요.”
둘은 장독대 옆 좁은 돌길을 지나, 작은 개울가로 향했다.
개울 위에 걸린 평평한 돌다리를 건너던 정숙이 발을 살짝 헛디디자,
윤호는 재빨리 손을 뻗어 그녀의 팔을 받쳤다.
“괜찮으세요?”
“예… 놀랐어요, 잠깐.”
“앞으론 제가 먼저 보고 말씀드릴게요.
길이 익숙하시더라도, 오늘은… 제 눈이 되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 말이 어쩐지 위로처럼 들렸다.
돌길 위의 그림자가 길어졌고, 개울물 위로 잠자리 한 마리가 낮게 날았다.
두 사람 사이엔 아직 ‘말’보다 ‘침묵’이 많았지만,
그 침묵이 더 어색하지 않게 느껴지는 순간이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