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대문 앞에서

42화. 창덕궁으로 간 날

by 기억을 뀌메는 사람 황미순

42화. 창덕궁으로 간 날

1988년, 초겨울의 공기는 매서웠지만

그날 아침 우리 집은 온기와 분주함으로 가득했다.

현철 오빠는 점퍼에 장갑까지 챙기고,

부모님 대신 보호자처럼 든든하게 서 있었다.


“준수야, 목도리 했지? 수빈이 코트 단추 다 잠가! 선영이, 도시락 가방 챙겼어?”

오빠는 자꾸만 사람을 웃게 만드는 목소리로 동생들을 챙겼다.

엄마는 이모와 식당일 때문에, 아빠는 새벽 일터에 가셔서

오늘은 우리가 오빠 손에 맡겨졌다.


작은 도시락 가방엔 김밥, 삶은 달걀, 어묵볶음, 귤이 하나씩 담겼다.

따뜻한 물을 담은 보온병엔 엄마가 끓여준 보리차.

그게 전부였지만 그날의 도시락은 어디서도 살 수 없는 맛이었다.


하영이는 연보랏빛 귀마개를 쓰고 우리 집 앞으로 왔다.

“안녕~ 현철 오빠! 안녕하세요, 애들~”

오빠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고, 하영이는 수줍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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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끝에서 바라본 유년의 기억을 꿰메어 글을 씁니다. 삶의 조각들을 하나씩 꿰메어 언젠가는 나만의 ‘토지’를 완성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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