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대문 앞에서

제74화. 조용한 도전, 하영이의 날

by 기억을 뀌메는 사람 황미순

제74화. 조용한 도전, 하영이의 날

— “그냥 시험이 아니라 내 마음을 확인하는 날”

학력경시대회 날 아침.
하영이는 평소와 달리 운동화가 아닌 구두를 신고 학교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범생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
오늘은 자기 자신에게 다짐하듯 특별하게 준비해 온 날 같았다.

“긴장돼?”
내가 묻자 하영이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웃으며 말했다.

“조금… 아니, 많이. 하지만… 나 해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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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하루, 다른 마음

학교 운동장에 집결한 경시대회 참가자들은
전교 상위권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영이는 교복 자락을 조심히 손에 쥔 채,
시험 장소인 3학년 교실로 향했다.

우린 그 문 앞까지 따라갔고,
하영이는 문을 열기 전 잠시 뒤돌아보았다.

“기다려줘. 나 꼭 잘 보고 나올게.”
그 말이 어쩌면 “나를 믿어줘”라는 말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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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시간 동안

윤하와 나는 교정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하영이가 나올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윤하는 작게 흥얼거리며 가사 노트를 쓰고 있었고
나는 하영이가 내 책가방 안에 맡긴 연습장 몇 장을 읽었다.

그 안엔 수학 공식이 아닌,
하영이의 작은 다짐들이 손글씨로 적혀 있었다.

> “나를 믿는 연습부터 시작하자.”
“실수해도 괜찮아. 그게 내가 자라는 과정이니까.”
“완벽하지 않아도, 꾸준히 하는 내가 멋진 사람이다.”



나는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책 속의 하영이보다,
현실 속 하영이가 더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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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이 끝난 뒤

오후 1시가 지나고, 시험이 끝났다.
하영이는 땀이 촉촉하게 밴 이마로
햇볕 아래를 걸어 나왔다.

“어땠어?”
“생각보다 어려웠어. 근데… 신기하게 후회는 안 들어.”

하영이는 이기려고 애쓰기보다,
자신의 노력과 용기를 다 쓰고 나온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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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선생님의 격려

다음날 수학 선생님이 하영이를 교무실로 불렀다.
“문제 풀이 과정을 보니까, 너의 사고력은 안정적이야.
결과보다 네가 쌓은 실력이 눈에 보여서 흐뭇하다.”

하영이는 그 말을 가슴에 꼭 품었다.
누군가 자신의 속도를 인정해 주는 순간,
자신감이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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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윤하, 그리고 하영이

도서관 자율학습실에서 셋이 마주 앉아
나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하영이는 교수도 되고, 작가도 되고, 수학왕도 될 것 같아.”
윤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 근데 가끔은 장난도 좀 치자~” 하고 웃었다.

하영이는 그날, 좀 많이 웃었다.
시험의 결과가 아니라
자기 마음을 넘긴 날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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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편지 한 장

며칠 뒤, 하영이는 나에게 조그만 쪽지를 건넸다.
그 안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선영아, 내가 무섭고 흔들릴 때마다
네가 내 옆에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힘이었는지 몰라.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같이 옆에 있어줘.
우리… 각자의 길을 가더라도 말이야.”



나는 그 쪽지를 아직도 일기장 한 모퉁이에 끼워두고 있다.
언제고 꺼내보면
하영이의 맑은 눈과, 말없이 전해오던 믿음이 떠오를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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