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대문 앞에서

86화. 졸업앨범 사진 찍는 날

by 기억을 뀌메는 사람 황미순

86화. 졸업앨범 사진 찍는 날

중학교 3학년의 가을은 그렇게 조용히 깊어지고 있었다. 운동장 옆 감나무에도 붉은 감이 달리고, 복도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은 어쩐지 더 부드러웠다. 그날은 졸업앨범 사진을 찍는 날이었다. 학교 전체가 어딘지 들뜬 공기에 잠겨 있었다.

"얘, 너 오늘 머리 말렸어?" 하영이가 내 옆에 다가와 속삭였다.

나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쑥스러이 웃었다. “어제 엄마가 말려주셨어. 졸업사진이니까 예쁘게 나오라고.”

교복은 단정히 다려져 있었고, 실내화도 새하얗게 빨아 신었다. 평소보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신경을 쓰고, 머리카락 하나하나 정돈하면서 친구들 사이에는 알 수 없는 긴장과 설렘이 맴돌았다.

윤하는 평소처럼 당당한 표정으로 교실에 들어섰다. 오늘따라 립글로스를 살짝 바른 것 같았다. 친구들은 눈치채지 못한 척했지만, 그녀의 입꼬리에는 자신감이 살짝 묻어 있었다. "나 오늘 사진 잘 나올 것 같지 않아?" 윤하가 농담처럼 말하자, 교실 안에 웃음이 번졌다.

하지만 모두가 그처럼 여유로운 건 아니었다. 어떤 아이는 거울 앞에서 자꾸만 얼굴을 찡그렸고, 어떤 아이는 머리를 뒤로 질끈 묶으며 "난 그냥 대충 나올래"라고 말했지만, 손끝은 끝까지 교복의 주름을 고르고 있었다. 외모에 대한 고민, 자신감의 유무, 서로 다른 성장 속도는 고스란히 얼굴에 드러났다.

사진은 운동장 한쪽, 햇빛이 잘 드는 담벼락 앞에서 찍었다. 반별로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여기저기서 웃음과 수다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안경 벗을까?"
"괜히 후회할걸. 평소대로 찍자."
"나 코 옆에 여드름 났어. 오늘만 안 났으면 좋았잖아."

그렇게 우리 반 차례가 왔다. 담임 선생님이 "얘들아, 얼굴 펴~ 졸업사진은 평생 남는다!"며 웃자, 모두 고개를 들어 카메라를 바라봤다. 사진사 아저씨는 "하나, 둘, 셋!" 하고 외치며 셔터를 눌렀다.

찰칵. 그 순간, 수많은 감정이 동시에 지나갔다. 설렘, 아쉬움, 그리고 조금은 쑥스러운 자의식.

단체 사진이 끝나고 개인 사진 촬영이 이어졌다. 혼자 카메라 앞에 서는 건 생각보다 떨리는 일이었다. 나는 어깨를 조금 펴고,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으려 애썼다. 하영이는 입꼬리를 살짝 올린 반달 웃음을 지었고, 윤하는 시선이 흔들림 없이 카메라를 향했다. 셋이 함께 찍는 사진도 있었고, 반 친구들끼리 즉석에서 모여 셀카처럼 찍은 장면도 많았다.

사진 촬영이 끝난 뒤, 교실로 돌아가는 길. 운동장 가에 쭈그리고 앉아 아이들이 서로의 사진을 확인하며 웃었다.
“너 이거 완전 연예인 같다.”
“야, 너 눈 감았어. 다시 찍자.”

누구는 사진 속 자신을 보고 만족해했고, 누구는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에 속상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모두에게 공통된 감정은 있었다. 바로 ‘우리는 곧 졸업한다’는 조용한 실감.

하영이는 교실 창가에 앉아 내게 말했다. “선영아, 우리 정말 중학교 거의 다 끝난 거야. 신기하지 않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응, 어제 같은데 벌써 3년이 다 됐네.” 하고 말했다.
윤하도 다가왔다. "그래도 오늘 사진은 나중에 보면 웃길 것 같아. 고등학생 되면 다 다르게 보일걸?"

각자의 생각은 조금씩 달랐다. 어떤 친구는 사진 속 자신의 변화에 놀랐고, 어떤 친구는 그저 추억 하나가 늘어났다고 여겼다. 그리고 우리 셋은, 서로 다른 길을 향해 걷고 있었지만 이 하루만큼은 같은 교복, 같은 햇빛 아래서 같은 마음으로 웃고 있었다.

교실 복도에서 졸업 앨범 편집을 맡은 친구가 말하길, 사진은 인생의 순간을 붙잡는 일이라 했다. 언젠가 이 사진을 보며 오늘의 풋풋함과 소중함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라며,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날의 햇살과 웃음소리, 그리고 가슴 깊은 어딘가에 자리한 미묘한 감정들은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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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끝에서 바라본 유년의 기억을 꿰메어 글을 씁니다. 삶의 조각들을 하나씩 꿰메어 언젠가는 나만의 ‘토지’를 완성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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