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묻은 손, 맑은 마음》

1화

1화. 호미보다 먼저 배운 것

나는 흙에서 태어났다.
정확히는 충청남도 청양, 마당에 닭이 종종거리던 작은 기와집이었다. 새벽이면 닭이 울고, 낮이면 개가 짖었다. 우리 집 마당에는 늘 무언가 말라가고 있었다. 들에서 걷어온 콩대, 가지, 고추, 들깨, 말린 고구마 줄기 같은 것들. 흙과 식물과 먼지가 뒤섞인 냄새가, 그 시절의 공기였다.

내가 삽보다 먼저 배운 건 호미질이었다.
아버지가 갈아둔 고랑을 따라가며 엄마는 쪼그리고 앉아 호미로 풀을 캤고, 나는 그 옆에서 따라 하곤 했다. 처음엔 땅보다 손을 더 긁었고, 풀보다 손톱에 흙을 더 담았다. 그래도 뭔가 '돕고 있다'는 느낌에 뿌듯했는지, 흙밭에 앉아 있는 시간이 싫지 않았다. 어린 나는 그게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다. 봄이면 감자, 여름엔 고추, 가을엔 벼, 겨울엔 땔감을 준비하는 일이 돌아가며 이어졌다. 바람이 불어도, 비가 내려도, 삶은 늘 땅을 기준으로 흘러갔다.

우리 아버지는 말수가 적은 분이었다.
그렇다고 무뚝뚝한 분은 아니었다. 당신의 정은 손에 있었다. 일손이 부족해도 남의 논에서 품을 팔아 오시는 사람. 누구는 “사내답다”라고 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건 참 고된 삶이었다. 젊은 날의 아버지는 늘 어깨가 무거워 보였다. 어머니는 그 어깨 옆에서 묵묵히 일하셨고, 나는 그 두 사람의 등을 보며 컸다.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엔 집에서 학교까지 흙길을 걸어 다녔다. 비가 오면 신발이 진흙에 빠졌고, 해가 지면 논두렁에서 개구리 소리가 쏟아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세상은 단순했다. 학교, 논, 우물, 아궁이, 그리고 하늘. 하늘은 그렇게 맑고, 땅은 그렇게 넉넉했다.

하루는, 내가 혼자 고구마 밭에서 흙을 파다가 도마뱀을 잡았다. 꼬리가 잘려 나갔고, 놈은 무서운 속도로 도망쳤다. 나는 울먹이며 아버지께 뛰어가 “죽었어” 하고 소리쳤다. 아버지는 무릎을 굽히고 잘린 꼬리를 보더니, 조용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괜찮아. 쟤는 도망치려고 스스로 내준 거야. 살아.”

그 말은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았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상처 입을 수도 있다는 것. 말보다 더 깊은 가르침이었다.

내 손엔 늘 흙이 묻어 있었다.
그러나 내 마음은, 그보다 훨씬 맑아지고 있었다.
나는 그때 알았다.
내가 배운 첫 번째 삶의 기술은, 땅을 일구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다잡는 일이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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