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묻은 손, 맑은 마음》

15화

15화. 다시 돌아온 아이, 그리고 아이의 아이

미국으로 떠났던 둘째가
다시 돌아온다고 했다.

미국계 회사에서 일하던 그 녀석이
주재원으로 한국에 몇 년간 머문다며
“이젠 아이들도 한국말 좀 배워야죠.”
하고 웃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 깊은 데서 뭔가가 찌르르 올라왔다.
멀어진 줄만 알았던 인연이
조용히 다시 손을 내미는 기분이었다.

둘째는
미국에서 결혼을 했다.
며느리는 정 많고 성실한 사람이었고,
손주들은
외국말이 더 익숙했지만
우리 곁에 와서도
어색하지 않게 잘 어울렸다.

그날,
공항에서 둘째네 가족을 마중 나갔다.

오랜만에 마주한 둘째 아들의 얼굴.
이젠 어엿한 아빠가 되어 있었고,
아이를 안은 그의 모습에서
문득
젊은 날의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아내는 손주들 얼굴을 쓰다듬으며
한참을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
나는 괜히 목이 메어
가방을 들어주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날 밤,
집에 모여 식사를 했다.
오랜만에 북적이는 식탁.
손주들이 어눌한 한국말로
“할아버지, 이거 맛있어요!”
하는 소리에
나는 입에 넣은 반찬도 모르게 삼켰다.

내 인생에 다시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돌아왔다.

이젠 내가
부모가 아닌,
‘할아버지’로 살아갈 시간.

자식들이 떠나던 순간엔
텅 빈 것 같았던 집이
이제는
손주들 웃음소리에 다시 살아났다.

세월이 참 신기하다.
내가 떠나보낸 아이가
다시 나를 찾아오고,
그 아이의 아이가 또 내 곁을 맴도는 것.

그날 밤,
늦도록 창밖을 보며
마음속으로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
이제야 조금
아버지 마음을 알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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