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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품은 집》
7화. 서당의 글씨, 마음의 길
내가 글을 다시 붙든 건
늦은 나이에 문득 마음이 시끄러워서였다.
국민학교를 마치고, 중학교도 어렵사리 졸업했다.
손에 졸업장은 쥐었지만,
그 시절 내 머릿속엔 공부보단
산과 들, 아버지 뒤를 따라다니는 삶이 더 진했다.
그래서 그 뒤로 나는 일만 했다.
손으로 밥을 벌고,
몸으로 계절을 맞이하고,
발로 땀을 뿌려 땅을 일궜다.
그렇게 수십 해가 흘렀다.
하지만 어느 날,
마음속이 이상하게 헛헛했다.
몸은 익숙한 리듬대로 밭을 갈고 있었지만,
어딘가 한쪽이 빈 듯했다.
그럴 때,
읍내에 서당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
서당은 내게
단순히 글을 배우는 곳이 아니었다.
묵향이 스며든 마루 위에 앉아
사자성어 하나하나를 푸는 시간은,
마치 내 속을 헤집는 일이었다.
훈장님은
말씀이 많지 않으셨다.
하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깊었다.
“형설지공(螢雪之功),”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초지일관(初志一貫).”
나는 묻고, 따라 쓰고, 되새기며
스스로를 조금씩 새로 쌓아 올렸다.
그때의 나는
더 배우고 싶었다.
땀 흘려 농사짓는 삶도 좋지만,
생각과 말, 글과 마음을 닦는 삶도
늦게나마 걸어보고 싶었다.
**
서당에 다니기 시작할 즈음,
마을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예전엔 한나절 걸리던 길도
차가 생기고 도로가 놓이니
도시에 흩어졌던 형제들이
종종 어머님 집에 찾아오기 시작했다.
큰형은 미국에서,
작은형은 청주에서,
여동생은 주말마다 남편과 함께
고향을 찾았다.
그 풍경이 참 따뜻했다.
어머님은 말은 없으셔도
형제들 목소리가 담 안에 울려 퍼질 땐
표정이 달라지셨다.
**
하지만 그 무렵,
어머님의 기력이 눈에 띄게 줄었다.
잠든 시간이 늘고,
예전 같지 않은 손놀림이 아팠다.
아내가 말하더라.
“우리, 어머님 가까이 살자고요.
나는 장모님도 모셔야 하니까,
밭 끝에 새 집을 짓죠.”
나는 그 말을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아내는 외동이었다.
형제가 많은 나와 달리,
어머님을 맡아줄 이가 자기밖에 없단 걸
일찌감치 각오했던 것 같았다.
**
그래서 우리는
내 사과밭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작은 집을 지었다.
해가 가장 먼저 드는 자리.
봄이면 복사꽃이 피고,
가을이면 붉은 사과가 햇빛을 머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어머님은 자주 우리 집에 들르셨고,
장모님은 조용히 아궁이에 불을 지피셨다.
아내는 그 둘 사이를 오가며
밥상을 차렸고,
나는 그 옆을 말없이 지켰다.
그게
우리가 생각한 ‘도리’였다.
말 대신 손으로 보여주는 삶.
가르치지 않아도 물려주는 마음.
**
서당에서 배운 글귀들이
하나하나 내 일상에 녹아들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어른을 모시는 마음,
배움은 늦지 않다는 진심까지.
지금도
마을 어귀를 지나는 젊은이들에게
나는 종종 서당 이야기를 꺼낸다.
“글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쓰는 거야.”
그 말을 훈장님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남길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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