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산이 품은 집》
8화. 대통령이 다녀간 밭
나는 늘 바랐다.
이 아름다운 산자락 아래,
우리 마을이 조금 더 나아지길.
사람들이 떠나는 마을이 아니라,
돌아오고 싶은 마을이 되길.
농사만 지어선 안 된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나는 농협도 드나들고,
군청에도 가서 담당자들과 얼굴을 익혔다.
농어촌 지원센터에서 열리는 강의가 있다 하면
밭일하다 말고 군화만 갈아 신고 달려갔다.
모르는 건 물었고,
아는 건 나눴다.
조합도 만들고,
공무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토론도 했다.
서울, 대전, 청주…
배울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갔다.
주민들을 설득하는 것도 내 일이었다.
“이장님, 됐어요. 우리 그냥 살던 대로 살죠.”
그 말이 서운해도, 이해했다.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나는 우리가 더 잘 살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
이장이 된 것도
마을을 바꾸고 싶어서였다.
책상 위 도장 하나로 되는 일이 아닌 건 알았지만
그 도장이 있어야
문을 두드릴 수 있었다.
나는 민원을 넣고,
건의를 하고,
편지를 쓰고,
전화로 설득했다.
비포장 도로부터, 상수도, 공동 냉장고까지
마을에 필요한 건 무조건 썼다.
주민등록 숫자보다 내가 쓴 민원이 더 많다는 우스갯소리도 돌았다.
어떤 날은 지치기도 했다.
“이장님 혼자 뛰면 뭐 하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농사일은 밀려가고,
몸은 갈수록 무거워졌다.
하지만, 그때였다.
예상치 못한 소식이 들려왔다.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대요.”
“노무현 대통령이 괴산 연풍을 방문하신답니다.”
“그런데… 이장님 이야기를 듣고 싶다네요.”
**
그날,
내 마음은 사과나무 꽃처럼 흩날렸다.
왜 나지? 왜 우리 마을이지?
수많은 질문이 스쳐갔다.
하지만 한편으론
지금껏 내가 한 일들이
헛된 게 아니었구나 싶었다.
대통령은 정말로
내 이야기를 듣기 위해 찾아오셨다.
수수한 웃음을 띠며,
마을 어귀에 서서
내게 “많이 힘드셨죠?”라고 물으셨다.
나는
우리 마을 이야기,
내가 왜 여기서 안 떠나고 사는지,
왜 배움을 계속 이어갔는지,
이 동네가 가진 잠재력이 뭔지를
숨도 제대로 못 쉬며 쏟아냈다.
그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그게 참, 잊히질 않는다.
**
그날 이후,
마을은 흔들렸다.
좋은 쪽으로.
도로가 다듬어지고,
농산물 유통에 군에서 관심을 보였고,
외지 사람들이 견학을 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제
이 마을을 ‘가능성 있는 곳’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땅을 일구던 젊은 시절이 떠올랐다.
장화를 신은 채 서당에 가던 나,
훈장님 앞에서 사자성어를 배운 날들,
그리고 밭 끝에 집을 짓던 그 계절.
**
나는 아직도 이장이지만,
내가 마을을 바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가능성을 믿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걸 끝까지 놓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언젠가
내 자식들이나 마을의 후배들이
“이 동네, 괜찮네”라고 말해준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나의 밭은 여전히 제자리지만,
그 밭을 둘러싼 마을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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