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품은 집》

12

by 기억을 뀌메는 사람 황미순

《산이 품은 집》

12화. 엄마 밥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아직도 엄마 밥이 제일 맛있다.

어릴 땐 몰랐다.
그 밥이 그렇게 귀한 줄도,
그 맛이 그렇게 오래갈 줄도.

**

우리 어머니는
말수가 적다.
잔소리도 잘 안 하셨다.
어릴 땐 그게 서운했다.
누나들한테는 이것저것 챙겨주면서
나는 늘 “남자는 알아서 커야지” 하셨으니까.

그런데 나중에 알았다.
어머니의 사랑은
말이 아니라 밥에 있었던 거다.

**

논매고 돌아오면
된장국이 끓고 있었고
산에서 내려오면
참기름에 비벼 먹으라고
호박잎 한 소쿠리를 쪄두셨다.

김치찌개도,
간장조림도,
달걀프라이 하나도
어머니 손을 거치면
그냥 ‘밥’이 아니라 ‘기다림’이 되었다.

**

결혼하고,
아내의 손맛에 익숙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내도 밥 잘한다.
정성도 많고, 요리책도 자주 보고,
요즘엔 건강식도 연구해서 만들어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입맛은 늘 어머니를 따라간다.
밥맛이라는 게 그런가 보다.
단지 맛의 문제가 아니라
그 시절, 그 공기, 그 냄새까지 담겨 있기에.

**

그래서 지금도
시시때때로 어머니 댁에 간다.
그냥 슬리퍼 신고 마실 가듯
텃밭 둘러보고,
"어머니, 찬밥 있어요?" 하고
숟가락 하나 슬쩍 얹는다.

어머니는 안다.
왜 내가 그냥 가만히 밥만 먹는지.
말 안 해도,
그게 나한텐 가장 편한 시간이라는 걸.

**

아내는 아직 그걸 모를지도 모른다.
아니, 눈치는 챘는데
모른 척해주는 걸지도.

어쩌면
그 마음이 더 고맙다.
한참을 같이 살았지만,
어머니 밥을 못 이긴다는 걸
굳이 언급하지 않는 그 따뜻한 배려.

**

어머니는
언젠가는 밥을 안 하게 되실 거다.
그날이 오면
나도 더 이상 ‘그 밥’을 먹을 수 없겠지.

그때가 오기 전까지는
어머니가 밥 짓는 주방을
자주 들여다보고,
그 밥 냄새를 내 마음에
많이 많이 담아두고 싶다.

**

누군가는
밥맛이 뭐 대수냐 할지 모르지만,
내겐
그 밥 한 그릇이
모든 시절의 중심이었다.

내가 산길에서 돌아와 찾은 것도,
사과밭에 나가기 전 힘냈던 것도,
어머니의 밥 한술이었다.

**

그리고
이제는 안다.
내 아이들도 언젠가
누구 밥이 가장 맛있냐 물으면
“우리 엄마 밥이요.”
하고 대답할 거라는 걸.

그 말 듣는 날,
아내가 웃을 수 있게
나는 오늘도 밭에서 돌아오며
그저 조용히 말한다.
"당신, 고마워."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기억을 뀌메는 사람···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마루 끝에서 바라본 유년의 기억을 꿰메어 글을 씁니다. 삶의 조각들을 하나씩 꿰메어 언젠가는 나만의 ‘토지’를 완성하고 싶습니다.

167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292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매거진의 이전글《산이 품은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