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품은 집》

13

by 기억을 뀌메는 사람 황미순

《산이 품은 집》

13화. 어머니의 몫

우리 어머니는
이제 아흔이 넘으셨다.
지팡이를 짚고, 허리는 많이 굽으셨지만,
여전히 날이 맑은 날엔
텃밭에 먼저 나가 계신다.

**

“아이고, 이제 그만하셔요.”
자식들이 아무리 말려도,
어머니는 고개를 내저으신다.

“몸이 움직일 때 움직여야지.”
“놀면 늙어버려.”

그 말씀이
예전엔 걱정으로 들렸지만,
이젠 존경으로 다가온다.

**

텃밭엔
상추, 고추, 들깨, 배추,
없는 게 없다.
한두 뿌리씩이지만
그 속엔 어머니의
사계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뿐이 아니다.
가을이 오면 밤나무며 호두나무를 따라
동네를 천천히 돌기 시작하신다.

어디서 떨어진 밤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으신다.
한 알 한 알 주워
깨끗이 말리고, 봉투에 나눠 담아
“이건 누구 몫, 이건 누구 몫…”
정성껏 챙기신다.

**

그 마음을 보면
눈시울이 뜨겁다.
그저 드시고 싶으셔서가 아니다.
자식들, 손주들 오면
뭐라도 하나 더 주고 싶으신 거다.

**

어머니는 그렇게
온 동네를 천천히 다니시며
나무 아래로 떨어진 것들까지도
소중히 모으신다.
마치
세월에서 떨어진 하루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않으시듯이.

**

가끔은
내가 수확한 사과보다
어머니가 건네준 밤 한 봉지가
훨씬 더 무겁게 느껴진다.

왜냐면
거긴 몸으로 살다 온 계절이 담겨 있으니까.
자식 하나하나 이름을 부르며
주머니처럼 꼭 싸쥐신
그 손의 온기가 있으니까.

**

나는 이제야 알겠다.
왜 어머니가
90이 넘어도 여전히
밭으로 나가시는지를.

사는 일이란,
무언가를 일구고,
그걸 나누는 데 있다는 걸
몸으로 보여주고 계신 거다.

**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침 사과밭을 나가기 전,
먼저 어머니 집을 들른다.

“어머니, 뭐 하세요?”
물으면
항상 똑같다.

“그냥, 니들 먹을 거 좀 챙기는 중이여.”
그리고는
작은 봉투 하나를
슬쩍 내 손에 쥐어주신다.

거기 담긴 건
밤 몇 알, 호두 몇 개지만
내게는
세상에서 제일 따뜻한
마음의 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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