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초기와 나, 그리고 오늘의 평화
마루끝일기 – 예초기와 나, 그리고 오늘의 평화
8월 14일, 비 온 뒤 맑음.
밤새 내린 비가 마당의 먼지를 깨끗이 씻어냈다. 하늘은 투명하고 공기는 조금 눅눅했지만, 그마저도 오늘은 기분 좋게 느껴졌다. 남편은 평소보다 부지런히 출근 준비를 마쳤다. 나는 평소처럼 현관 앞에서 그 모습을 배웅했다.
문이 닫히자마자, 나의 ‘진짜 하루’가 시작됐다.
헬스장은 우리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다. 집에서 거실 끝까지 걸어가는 시간이 1분이니, 사실상 출근길보다 짧다. 어찌 보면 운동하러 가는 게 아니라, 잠시 바람 쐬러 나가는 수준이다. 오늘도 “헬스장 가야지” 마음먹고 나서 양말을 신으니 이미 절반은 도착한 기분이었다.
헬스장에 들어서자 평소보다 한산했다. 내일이 휴일이라 그런가 보다. 러닝머신 구역은 거의 텅 비었고, 골프 연습장에도 두세 명만 조용히 스윙을 하고 있었다. 나는 곧장 골프 연습장으로 향했다.
공을 치기 시작하니 오늘은 이상하게 잘 맞았다. 타구음이 ‘땅!’ 하고 경쾌하게 울렸다.
‘오… 오늘은 나 좀 괜찮은데?’
스스로 뿌듯해하며 한참 휘두르다 보니, 옆자리 아저씨가 슬쩍 나를 본다. 그 눈빛에서 ‘저 사람, 한 달 뒤엔 KLPGA 나오겠는데?’ 하는 오해가 느껴졌다. 물론 그건 내 착각이었다. 세 번째 휘두른 공이 옆 타석으로 날아갔으니까.
그래도 기분 좋게 서비스 시간까지 챙겨 연습을 마쳤다. 이어서 러닝머신 앞으로 가서 40분을 채웠다. 사실 러닝머신은 내게 ‘운동기구’가 아니라 ‘자기와의 약속 시험대’다. 30분쯤 되면 발이 나를 배신하려 하고, 35분쯤엔 머리가 ‘그만 내려가자’고 유혹한다. 하지만 오늘은 기어코 40분을 채웠다.
그 순간, 나 스스로에게 “이 정도면 올림픽 금메달 줘도 되겠다”는 상을 내렸다.
헬스장을 나와 곧장 차에 올라탔다. 다음 목적지는 괴산밭. 오늘의 주인공은 예초기다.
며칠 전부터 예초기가 말썽이었다. 시동이 걸렸다 안 걸렸다, 그야말로 기계판 고양이다. 기분이 좋으면 부르르 소리를 내고, 싫으면 시치미 뚝 떼고 조용하다. 오늘은 수리센터에 데리고 가기로 했다. 평일 낮이라 비교적 한가할 거라 생각했다.
괴산 농기계 수리센터에 들어서니, 반가운 얼굴이 날 맞았다. 친절하고 기술이 탁월한 주무관님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또 오셨네요~”
그 말투가 꼭 미용실 원장님이 “앞머리 좀 자르러 오셨어요?” 하는 것 같았다.
그때 옆에서 수리를 기다리던 한 농부 선배님이 말을 걸었다.
“아니, 여자분이 예초기 하세요?”
나는 최대한 시크하게 대답했다.
“네, 별거 아니던데요.”
하지만 속마음은 이랬다.
‘네… 별거 있더라고요. 온몸 근육통이라는 별거.’
칼날도 갈아 달라고 부탁하니 주무관님이 말했다.
“시동이 걸리면요~”
그 말에 나는 속으로 이렇게 답했다.
‘걸려야 갈죠… 그게 문제라니까요.’
아, 진짜 후회됐다. 우리나라 예초기를 살 걸. 쿠팡에서 산 중국산 예초기는 날 너무 괴롭힌다. 시동 줄을 당길 때마다 로또 긁는 기분이다. ‘이번에 걸리면 대박!’ 하는 마음으로 당기지만, 10번 중 7번은 꽝이다.
주무관님이 능숙하게 기계를 만지자 금세 시동이 걸렸다.
“살아났네요!”
그 순간 기계에서 ‘나 아직 쓸만해~’ 하는 자존심이 느껴졌다. 하지만 내 속마음은 여전히 냉정했다.
‘그래도 다음에 또 고장 나면, 무조건 국산 산다.’
예초기를 차에 싣고 나오는 길, 하늘은 완전히 맑아져 있었다. 비로 씻긴 파란 하늘은 눈이 시릴 정도였다. 바람에는 초가을 냄새가 살짝 묻어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늘 하루를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헬스장에서 땀 빼고, 골프 연습으로 기분 올리고, 예초기까지 고쳤으니 이만하면 ‘일상형 금메달’ 감이다.
저녁엔 또 무언가 할 일이 생기겠지. 토마토를 따서 소스를 만들 수도 있고, 호박죽을 끓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고쳐진 예초기와 걸어서 5분 거리의 헬스장, 그리고 오늘의 뿌듯함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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