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들아 긴장해라
마루끝일기 – 8월 16일
밭이 오늘따라 유난히 조용하다.
아니, 조용한 게 아니라… 열매가 안 보여서 그런 거다.
단호박 여섯 모종이나 심었을 땐 ‘올여름은 단호박 파티다!’ 하고 잔뜩 들떴다. 수확할 때마다 이웃과 나누고, 팔고, 또 나눴다. 그런데 요즘 밭을 아무리 둘러봐도, 단호박이 보이지 않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초반에 내 몫부터 챙겨둘 걸 그랬다.
풀 관리는 나름 한다고 했다. 예초기도 돌리고, 낮에도 낫 들고 풀 베고, 허리 펴면 하늘 보고, 허리 굽히면 땅 보고… 그런데 풀은 ‘우후죽순’이 아니라 ‘우후 쑥쑥 쑥쑥’. 내 발목까지 치고 올라와, 이쯤 되면 풀들이 나를 키우는 건 아닌가 싶다.
두릅밭도 처음엔 싱그럽더니 풀한테 밀려 ‘우리도 좀 살자’ 하듯 듬성듬성 나고, 더덕밭은… 음, 가을에 수확해 보기 전까진 말을 아끼련다. 고구마 두 고랑은 그래도 체면치레는 할 듯하다.
남편이 좋아하는 단호박은, 오이와 참외 줄기와 함께 풀숲에 파묻혀 숨도 못 쉬다가 어느 날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 참 장렬했다. 덕분에 밭은 250평 중 200평을 맷돌호박이 장악했다. 줄기를 옆으로 옆으로 뻗으며 자기 땅인 양 눌러앉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밭을 재정비하자. 두 줄을 비워, 단호박 수프 끓일 때 모아둔 씨를 심었다. 원래는 5월 말에 심어야 하는데, 나는 원래 농사 달력이 아닌 ‘내 기분 달력’을 따른다. 5월 말에 심어서 7·8월에 실컷 먹었으니, 이번엔 실험 삼아 8월 중순에 심어 보는 거다.
이제 밭은 ‘나만의 농사 실험실’이 됐다. 성공하면 ‘농사 혁신가’고, 실패하면 ‘밭에서 노는 사람’이겠지. 일주일 안에 싹이 올라오면, 그땐 정말 지극정성으로 키울 거다. 풀들이 시샘할 정도로.
그리고 만약 또 열매가 안 열리면…?
그땐 내년 봄에 단호박을 여섯 모종이 아니라 예순 모종 심을 거다.
풀들아, 긴장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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