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 “첫 만남의 밤”
제2화 ― “첫 만남의 밤”
토요일 오후, 햇살이 부드럽게 캠퍼스 담벼락을 비추고 있었다. 윤호는 약속 시간보다 삼십 분이나 일찍 도착해 근처 카페에 앉아 있었다.
심장이 괜히 빨리 뛰었다. 손바닥에 땀이 차올라 종이컵을 만지작거렸다.
‘이걸 왜 이렇게 긴장하지. 그냥 동아리 후배랑 만나는 거랑 비슷한 거잖아.’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그 말이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문이 열리고, 낯선 그림자가 들어섰다.
짧은 단발머리, 가볍게 청자켓을 걸친 모습. 가방엔 애니메이션 캐릭터 키링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눈이 반짝이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녀가, 윤호를 보자마자 손을 흔들었다.
“오빠 맞죠?”
밝고 가벼운 목소리. 윤호는 순간적으로 말이 막혔다. 사진으로만 보던 얼굴이 실제로 눈앞에 있으니, 마치 화면에서 뛰쳐나온 듯했다.
“어… 응. 은별?”
그의 목소리는 예상보다 작게 나왔다.
“네!”
자리에 앉은 은별은 숨을 고르기도 전에 가방에서 스케치북을 꺼냈다.
“저 사실 보여주고 싶었어요. 오빠 그림 봤으니까, 저도 제 걸 보여주는 게 맞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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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북 속엔 다채로운 캐릭터들이 있었다. 하지만 가장 눈에 띈 건, 날카로운 눈매와 강렬한 포즈의 여전사 캐릭터였다. 무거운 갑옷 대신 찢어진 청바지에 가죽 재킷을 걸친 모습. 눈빛만으로도 세상에 반항하겠다는 기세가 느껴졌다.
“이거… 네가 그린 거야?”
윤호가 놀란 듯 묻자, 은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 뭔가 힘 있고, 개성 있는 캐릭터들을 좋아해요. 만화 속에서라도 세상에 맞서는 기분이 좋거든요.”
윤호는 그 그림을 오래 들여다봤다. 자신이 그리는 인물들은 늘 무너지고 지쳐 있는 얼굴인데, 그녀의 그림은 그 반대였다. 꺾이지 않고 맞서는 힘. 그 차이가 묘하게 가슴을 두드렸다.
“좋다.”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내 그림이랑 완전히 다르네. 난 늘 어둡고, 무너지는 사람들만 그리거든.”
“알아요. 오빠 그림에서 눈을 못 뗀 것도 그래서예요. 저는 늘 반항하는 캐릭터만 그리는데, 오빠 그림은 그 뒤에 숨은 진짜 마음 같아서.”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짧은 침묵 속에서 윤호는 처음으로 자신이 이해받고 있다는 기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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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흘렀다. 카페 한쪽 구석에서 두 사람은 그림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만화의 구조, 캐릭터의 서사, 사람들이 쉽게 지나쳐버리는 장면의 의미까지.
“오빠는 진짜 생각을 깊이 하는 것 같아요.”
“넌 진짜 자유롭다. 내가 못 그리는 걸 그려내.”
칭찬과 놀라움이 오가는 사이, 두 사람은 이미 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편해졌다.
어느새 창밖은 어둑해지고, 카페 음악은 하루의 끝을 알리듯 잔잔하게 흘러나왔다.
은별이 시계를 보더니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아, 벌써 이렇게 됐네. 집에 가야 하는데…”
윤호는 그 순간, 이상하게도 아쉬움이 확 몰려왔다.
‘이대로 헤어지면, 다시는 이런 시간을 못 가질 것 같아.’
그는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
“우리… 조금만 더 있을래?”
은별이 눈을 반짝였다.
“좋아요. 근데 카페 문 닫을 것 같은데.”
“그럼… 술, 마실래?”
말을 내뱉는 순간, 윤호는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걸 느꼈다. 자신이 술자리를 제안하다니,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좋죠!”
은별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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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 작은 술집에 자리를 잡았다. 조용한 조명이 은별의 얼굴을 더 밝게 만들었다.
“오빠 술 잘 못 마신다 했잖아요.”
“응. 근데 오늘은… 괜찮을 것 같아.”
잔을 부딪치며 둘은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갔다.
술기운 덕분인지 서로의 말이 더 솔직해졌다. 윤호는 자신의 불안과 공황에 대해, 은별은 고등학교 시절 혼자 그림만 붙잡고 있던 고독에 대해 털어놓았다.
은별이 잔을 내려놓으며 웃었다.
“이상하다. 오늘 처음 만났는데, 오빠한테는 괜히 다 얘기하고 싶어요.”
윤호는 고개를 숙였다.
“나도 그래. 그래서 더… 헤어지기 싫다.”
그 순간, 둘 사이에 말할 수 없는 기운이 흘렀다.
밖은 이미 깊은 밤. 그러나 두 사람의 봄날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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