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내 봄에 들어왔을 때〉

제3화 ― “낯선 집, 낯설지 않은 마음”

by 기억을 뀌메는 사람 황미순

제3화 ― “낯선 집, 낯설지 않은 마음”

술잔이 몇 번 오가고, 밤은 점점 깊어졌다.
은별은 원래 술을 잘 마시는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윤호와의 대화는 너무 잘 통했고, 자꾸만 웃음이 터졌다. 그 와중에 술이 몸속에 쌓여가는 걸 잊고 있었다.

“오빠… 진짜 잘생겼어요.”
은별은 술기운에 붉어진 얼굴로 불쑥 말했다. 눈매가 살짝 날카로워, 농담인지 진심인지 헷갈릴 만큼 직설적이었다.

윤호는 당황해 잔을 내려놓았다.
“뭐, 뭐래. 그냥 평범하지.”
“아니에요. 제가 본 사람 중에 제일 잘생겼는데요?”
은별은 엉뚱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윤호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스스로를 내내 불안한 사람이라 여겼는데, 이렇게 솔직하게 ‘좋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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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새벽으로 넘어가자, 은별은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몸을 휘청거렸다.
“나… 좀 어지럽다.”
윤호가 재빨리 그녀를 붙잡았다.
“괜찮아? 집까지는 어떻게 가려고 했어?”
“지하철… 아, 끊겼구나.”

윤호는 잠시 망설였다. 이대로 두면 위험했다. 택시를 태우려 했지만, 은별은 고개를 푹 숙이고 제대로 눈도 못 뜨고 있었다.
결국 그는 결단을 내렸다.
“우리 집… 가자. 가까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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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의 집은 오래된 빌라였다. 문을 열자마자, 거실에 앉아 있던 부모님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어? 너… 이 시간에?”
어머니가 놀란 눈으로 윤호와 은별을 번갈아 보았다.

“엄마, 아빠… 이 친구, 술을 좀 많이 마셨어. 그냥 재워야 할 것 같아.”
윤호는 목소리를 최대한 차분하게 눌렀다.

아버지는 잠시 눈을 크게 뜨더니, 곧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어쩔 수 없지. 방에 눕혀라.”

어머니는 여전히 놀란 기색이었지만, 은별이 제대로 눈도 못 뜨고 있는 모습을 보자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왔다.
“아이고… 애가 많이 힘들어 보이네. 물이라도 갖다 줄까?”
“응, 고마워요.” 윤호는 은별을 조심스레 부축해 자신의 방으로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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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눕힌 은별은 이따금 힘겹게 숨을 고르며 중얼거렸다.
“외할머니가… 화내시겠지… 늦었다고…”

윤호는 의아해졌다. 술기운에 흐려진 목소리였지만, 거기에 묻어난 외로움이 또렷했다.

그는 자리에서 물을 가져다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외할머니랑 같이 살아?”

은별은 힘겹게 눈을 떴다.
“응… 엄마는 다른 데 가셨어. 중학교 때… 아빠가 바람피워서… 그 뒤로… 다 달라졌어.”

짧은 말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너무 컸다.
윤호는 대답하지 못하고,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은별은 이내 다시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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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별의 얼굴은 고요했다. 169cm의 큰 키와 통통한 몸매, 백옥처럼 맑은 피부. 술기운에 붉어진 볼은 오히려 더 생기 있어 보였다. 그녀의 개성 있는 날카로운 눈매는 닫혀 있었지만, 윤호는 그 눈동자 속에 깃든 강함과 고독을 떠올렸다.

‘겉으론 당당한데… 속은 많이 외로운 사람인가 보다.’
윤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자신과 닮았다고 느꼈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여도, 마음 깊은 곳에 감춰진 상처가 있는 사람.

그는 의자에 앉아 한참 동안 은별을 바라보다가, 결국 불을 끄고 방을 나섰다. 거실로 나오자, 어머니가 소파에 앉아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너… 괜찮은 애 맞지?”
“응. 괜찮은 애야.”
윤호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버지는 말없이 신문을 덮으며 중얼거렸다.
“술은 조심해서 마셔야지. 특히 여자애는.”

윤호는 그 말에 괜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오늘이 자신에게 특별한 날이라는 걸 직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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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윤호는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처음 만난 날부터 이렇게 가까워질 수가 있을까?’
하지만 어쩐지, 은별의 존재가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처럼, 자신과 같은 세계를 걷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창밖에선 새벽바람이 불어와 커튼을 스쳤다.
윤호는 눈을 감으며 속으로 되뇌었다.

‘은별아… 내 봄은, 너로 시작하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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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끝에서 바라본 유년의 기억을 꿰메어 글을 씁니다. 삶의 조각들을 하나씩 꿰메어 언젠가는 나만의 ‘토지’를 완성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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