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 “아침의 도망”
제4화 ― “아침의 도망”
은별은 무겁게 감겨 있던 눈꺼풀을 천천히 떴다.
낯선 천장의 무늬가 시야에 들어왔다.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여기가 어디지?’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다.
옆에 보관된 가방, 벽에 걸린 만화 캐릭터 포스터. 그리고 방 안 가득한 연필과 스케치북들.
순간, 기억이 되살아났다.
술집에서 윤호와 함께 웃으며 마시던 장면, 그리고 휘청거리며 그의 부축을 받던 순간까지.
“어… 어떡해.”
은별은 벌떡 일어나며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낯선 남자의 방, 그것도 부모님이 계시는 집이라니.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자, 윤호의 어머니가 아침밥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어났구나? 괜찮아? 어제 많이 힘들어 보이던데.”
다정한 목소리였지만, 은별은 순간적으로 죄송함에 얼굴이 굳었다.
“저… 저 정말 죄송해요! 실례가 너무 많았어요. 술도 못 마시면서 괜히 오빠… 아니, 윤호 오빠한테 피해만 드리고.”
그녀는 허리를 깊게 숙였다. 손끝이 떨렸다.
윤호 어머니는 잠시 놀란 듯 은별을 바라보다가, 부드럽게 웃었다.
“괜찮아. 젊은 애들이 그럴 수도 있지. 걱정 말고 밥이라도 먹고 가렴.”
하지만 은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더 폐만 끼칠 것 같아요. 정말 죄송해요.”
그녀는 얼굴을 붉힌 채 현관으로 달려갔다. 신발을 급히 신으며 계속 중얼거렸다.
“정말 죄송해요… 실례했습니다.”
---
윤호는 방에서 그 소리를 듣고 허둥지둥 뛰어나왔다.
“은별아!”
그가 부르는 소리에, 은별은 잠시 고개를 돌렸다. 눈매는 여전히 날카로워 보였지만, 그 속엔 당황과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나… 먼저 갈게.”
“아니, 택시라도 불러줄게.”
“괜찮아. 나 그냥 탈 수 있어.”
말을 마치자마자 은별은 현관문을 열고 빠져나갔다. 그녀의 걸음은 도망치듯 급했다.
윤호는 멍하니 문 앞에 서 있었다. 아침 햇살이 비집고 들어와, 어젯밤과는 전혀 다른 공기를 만들고 있었다.
---
택시 안, 은별은 창밖을 바라보며 깊게 숨을 몰아쉬었다.
‘나 뭐 한 거지? 첫 만남에… 남자 집에서 자다니.’
자신이 너무 가볍게 보일까 두려웠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보이는 게 싫어서 스스로 더 도망쳤는지도 몰랐다.
머릿속에 외할머니의 얼굴이 스쳤다.
“여자는 자신을 지켜야 해. 남들 눈에 함부로 비치면 안 된다.”
강단 있는 외할머니의 말이 귓가를 때렸다.
은별은 눈을 꼭 감았다. 하지만 떠오르는 건 윤호의 얼굴뿐이었다. 어제 내내 자신을 존중하듯 들어주던 눈빛, 그리고 마지막에 불러주던 목소리.
‘… 잘생겼단 말까지 해버렸네. 미쳤어.’
얼굴이 다시 붉어졌다.
---
그 시각, 윤호는 거실에 앉아 있었다.
어머니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참 예의 바른 애네. 근데 왜 그렇게 급히 나간 거야?”
윤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나 때문이겠지. 나랑 같이 있던 게, 혹시 잘못된 건 아닐까 걱정했을 거야.’
그러나 마음 한편에 확실히 자리 잡은 감정이 있었다.
‘놓치고 싶지 않다.’
은별은 분명히 다르고 특별한 사람이었다. 밝은 웃음 뒤에 깊은 그림자가 있고, 당당한 그림체 속에 외로운 마음이 숨어 있었다.
그리고 윤호는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
그날 저녁, 윤호는 휴대폰을 열었다.
메시지를 보낼까 망설였다.
“잘 들어갔어?”
짧은 한마디조차 손가락이 떨려 쓰지 못했다. 혹시 부담스러울까, 혹은 연락이 더 멀어질까 두려웠다.
결국, 그는 단 한 줄만 남겼다.
“괜찮아?”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도 한참 동안 답이 오지 않았다. 윤호는 답장을 기다리며 방 안을 서성였다.
그 순간만큼은, 은별의 짧은 한 글자라도 세상에서 가장 간절하게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