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 “낯선 따뜻함 속으로”
제7화 ― “낯선 따뜻함 속으로"
주말 아침, 은별은 눈을 뜨자마자 기분이 묘하게 들떴다. 평소 같으면 외할머니의 잔소리에 하루를 시작했겠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윤호와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화장은 간단히, 옷은 편하게. 하지만 은별은 옷장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며 거울을 여러 번 들여다보았다. 결국 검정 셔츠에 데님을 골랐다. 너무 꾸미지도, 그렇다고 소홀해 보이지도 않는 차림. 스스로 만족은 되지 않았지만, 지금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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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는 약속 장소에 이미 나와 있었다. 멀리서 그가 손을 흔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키가 훤칠해 눈에 잘 띄었고, 어딘가 서툴면서도 정직한 미소가 은별의 마음을 흔들었다.
“왔네.”
“응, 기다렸어?”
“조금 일찍 나온 거지. 널 보니까… 괜히 기분이 좋아지네.”
그 한마디에 은별은 순간적으로 시선을 피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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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는 은별을 데리고 학교 앞 작은 식당으로 향했다. 김치찌개와 제육볶음이 놓인 소박한 상차림이었지만, 은별은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따뜻한 밥상을 마주한 듯했다.
“너, 잘 먹는다.”
윤호가 웃으며 말했다.
“응, 맛있어. 네가 먹자고 해서 그런가 봐.”
“하하, 다행이다. 내가 밥 잘 사줄 테니까, 앞으로는 굶지 말고.”
평소엔 잔소리와 통제 속에서 밥을 삼키던 은별에게, 윤호와 함께하는 식사는 그 자체로 자유였다. 그녀는 모처럼 편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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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후 윤호는 은별을 집으로 데려갔다. 은별은 순간 긴장했다. 남자의 원룸에 가본 적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윤호의 방은 의외로 깔끔했다. 책상 위엔 원고지와 드로잉북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벽에는 윤호가 그린 습작들이 붙어 있었다. 어둡지만 깊이 있는 그림들이었다.
“와… 진짜 잘 그린다.”
은별이 감탄하자 윤호는 얼굴을 붉혔다.
“아직 멀었지. 근데… 네가 이렇게 말해주니까 힘 나네.”
은별은 그림 하나하나에 시선을 멈췄다. 어떤 건 고독한 남자의 뒷모습, 어떤 건 어둠 속에 희미하게 빛나는 손. 모두 윤호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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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윤호가 물 한 컵을 건네며 말을 꺼냈다.
“나, 사실 가끔 힘들어.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숨이 막히는 것 같고. 그래서 정신과 상담도 받았었어.”
은별은 순간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넌 용기 있는 거야.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게.”
“용기라기보단… 네 앞이니까. 괜찮다고 생각했어.”
윤호는 고개를 숙였지만, 은별은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화려하지 않아도, 꾸미지 않아도 진실된 모습. 그것이 은별의 마음을 서서히 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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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윤호는 은별을 집 근처로 데려다주었다. 귀갓길 전, 은별은 윤호의 가족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우리 부모님? 그냥 평범해. 집에 가면 밥 먹으면서 얘기하고, 아빠는 늘 농담 던지고, 엄마는 잔소리도 하지만 챙겨주고… 누나도 하나 있는데, 잘 지내.”
은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에겐 사치 같은 단어들 ― ‘평범함, 화목함, 잔소리와 챙김’ ― 그 모든 게 윤호에겐 일상이었다.
가슴이 이상하게 저릿했다. 부러움인지, 서운함인지, 아니면 묘한 안도감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윤호의 세상은 자신이 살아온 것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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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 골목에 다다르자 은별은 발걸음을 멈췄다.
“오늘… 고마워. 나 진짜 좋았어.”
“나도. 너랑 있으면… 편해.”
말은 짧았지만, 마음은 충분히 전해졌다. 은별은 웃으며 손을 흔들고 골목길로 들어섰다.
낡은 임대아파트가 눈앞에 보이자, 현실이 다시 무겁게 다가왔다. 하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좁은 방이 아닌 따뜻한 세상 속을 걸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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