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내 봄에 들어왔을 때〉

제8화 “멀리 있음에도 가까운 마음”

by 기억을 뀌메는 사람 황미순

제8화 ― “멀리 있음에도 가까운 마음”

은별은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윤호가 밤새 보낸 메시지가 와 있을까, 아니면 아직 자고 있을까. 단순한 안부 한 줄에도 그녀는 하루 종일 기분이 달라졌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윤호의 학교는 서울에서 두 시간이나 떨어진 지방 도시. 버스를 타고 가려면 반나절이 훌쩍 지나갔고, 서로의 생활 리듬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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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또 윤호 생각하지?”
외할머니의 잔소리가 날아왔다. 은별은 대꾸하지 않고 방 문을 닫아버렸다. 그 말이 사실이니까 더 아프게 다가왔다.

그녀는 매일 보고 싶었다. 퇴근 후 가볍게 만나 밥을 먹거나,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하는 평범한 연인들처럼 살고 싶었다. 하지만 윤호는 미술학원 아르바이트까지 병행하고 있었고, 주중엔 온전히 학업에 묶여 있었다. 은별이 찾아갈 수도 있었지만, 그 긴 거리를 혼자 오가자니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두 사람의 만남은 토요일과 일요일, 윤호가 서울 본가로 올라오는 주말에만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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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 보자.”
윤호의 메시지가 도착하는 순간, 은별은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다. 그 한마디에 일주일의 모든 피곤과 억눌림이 풀려나갔다.

금요일 밤, 그녀는 한참을 설레며 옷을 고르고 머리를 만졌다. 마치 중요한 발표라도 앞둔 듯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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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신촌의 카페에서 둘은 다시 만났다. 윤호는 전날 작업하느라 다크서클이 짙었지만, 여전히 눈빛만은 맑았다.
“너 보고 싶어서 어제 그림도 대충 그렸어.”
윤호의 농담에 은별은 웃음을 터뜨렸다.
“거짓말. 넌 절대 대충 안 그릴 거잖아.”

짧은 대화였지만, 둘 사이의 공기는 따뜻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엔 늘 시간이 모자라다는 조급함이 따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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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시간이 다가올수록 은별의 표정은 무거워졌다.
“벌써 가야 돼?”
“응, 내일도 학원 가야 해. 일요일 저녁엔 내려가야 하고.”

윤호의 말에 은별은 고개를 떨궜다. 단지 두 시간이지만, 그 거리는 그녀에게 너무도 멀고 잔인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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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는 길, 은별은 버스 창밖을 멍하니 바라봤다. 도시의 불빛들이 흘러가듯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왜 이렇게 집착처럼 보고 싶을까. 그냥 주말마다 만나는 것도 충분한데…’

하지만 마음은 이성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윤호의 웃음, 목소리, 손끝의 따뜻함이 매 순간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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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 역시 은별을 그리워했다. 그림을 그리다 멈추면 무심코 휴대폰을 열어 그녀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말을 아꼈다. 은별이 이미 힘들어한다는 걸 알기에, 더 무겁게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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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은별은 이불 속에서 속삭이듯 문자를 보냈다.
“윤호야, 보고 싶어 죽겠어. 그냥… 매일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후 답장이 왔다.
“나도. 매일 보고 싶어. 근데… 우리가 더 단단해지려면 이 시간도 견뎌야 할 것 같아.”

은별은 휴대폰을 꼭 끌어안았다. 답답했지만 동시에 안심이 되었다. 윤호는 단순히 감정에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묵직하게 옆에 있어 주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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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은별의 마음은 점점 더 불안정해졌다. 일상으로 돌아오면 외할머니의 날 선 잔소리, 답답한 아파트 벽, 메마른 생활이 다시 그녀를 조여왔다.

그래서 윤호와의 주말이 끝나면, 은별은 마치 작은 천국이 끝나고 다시 현실 지옥으로 떨어지는 듯한 허무함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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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점점 깨달아갔다.
자신이 윤호를 원하는 건 단순한 연애가 아니라, 숨 쉴 구멍이자 도망칠 공간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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