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로 향하는 길
여수로 향하는 길은 뜻밖에도 길고, 조용하고, 묘하게 설렘이 섞여 있었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차 안의 공기와 대화의 흐름은 내 마음을 계속 흔들어 놓았다.
앞자리에 앉은 언니와 그는 처음 만난 사람들 치고 놀랍도록 잘 어울렸다.
언니는 분위기를 가볍게 띄우는 사람이었고,
그는 그 흐름에 자연스럽게 맞춰 대화를 이어갔다.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앞 좌석에서 번져올 때마다
나는 잠들지도 못한 채
그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창밖에서는 밤의 풍경이 조용히 흘러갔다.
가로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차창을 스치며 지나갈 때마다
차 안에는 따뜻한 빛과 어두운 그림자가 번갈아 스며들었다.
나는 눈을 뜨지 않아도
그 빛이 내 얼굴에 스쳐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참을 가고 있을 때,
조수석의 언니가 뒤를 돌아보았다.
“너 진짜 자는 거야? 안 자지?”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시선도 백미러 너머로 나에게 닿았다.
어쩐지 그 시선이 부드럽게 느껴졌다.
“그냥… 눈 좀 감고 있었어. 피곤하네.”
내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럴 것 같았어요. 목소리도 좀 지쳐 있던데.”
그 말 한마디에
잠깐 따뜻해지는 마음을 들키기 싫어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작은 미소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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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소에 거의 도착할 즈음,
그가 갑자기 말했다.
“둘이서만 여행 가도 좋겠지만…
셋이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죠?
덜 어색하고.”
그 말의 의도가 무엇인지
그 순간 알 수 없었다.
나를 배려하는 건지,
아니면 언니의 존재가 있으면
서로 마음을 덜 드러낼 수 있어서 편한 건지.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말속에는 ‘함께 있고 싶다’는 진심이
아주 작은 숨결처럼 묻어 있었다.
언니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근데 여수까지 가자고 한 건 왜예요?
거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있어요?”
그는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뇨. 그냥… 누군가와 멀리 가보고 싶었어요.
정확히 말하면—
오늘은 좀 떠나고 싶은 날이어서.”
그 말은 차 안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언니가 그 의미를 가볍게 넘기며 농담을 했지만,
나는 백미러 너머로 잠깐 마주친 그의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
그 눈빛에는
말하지 못한 무언가가 있었다.
내 마음과 닮은… 작은 공허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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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소에 도착하자 우리는 잠시 차에서 내려
찬 공기를 들이마셨다.
그 순간,
나는 여전히 그를 잘 모르는데도
이 길이 단순한 드라이브로 끝나지 않을 것이란
묘한 예감이 들었다.
흩어져가던 사랑의 마지막 잔상이
아직 내 안에 남아 있었지만,
그날 밤 여수로 향하는 길 위에서
새로운 무언가가 아주 천천히 시작되는 소리가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나는 그 소리를
조용히, 놓치지 않고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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