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가을 문에 창호지를 바른다
《가을, 문에 창호지를 바르다》
《마루 끝에서 본 세상》 2부, 제22화
가을볕이 마당 깊숙이 들어오던 어느 날,
엄마는 부엌에서 풀을 쑤시고
아빠는 각 방의 문짝을 하나씩 안마당으로 꺼내셨다.
하얗고 부드러운 창호지를
아빠는 긴 붓으로 풀칠하며 조심스레 문 위에 붙이셨다.
문짝 위를 쓸며 펼쳐지는 창호지는
어느새 바람을 막고 햇살을 감싸는 창이 되었다.
우리는 그 옆에서 풀통을 들고,
종이를 건네고,
삐져나온 풀자국을 손끝으로 살살 닦으며
자연스레 아빠의 일에 보탬이 되곤 했다.
엄마가 준비해주신 단풍잎을
예쁜 모양으로 잘라
창호지 한 켠에 장식처럼 붙이는 일도
우리 몫이었다.
"이건 가을이 우리 집에 다녀갔단 증거지."
아빠는 그렇게 웃으셨다.
문을 다 바른 뒤에는 벽지도 새로 바르셨다.
방마다 벽지가 새 옷처럼 입혀질 때마다
겨울이 곧 올 거라는 예감이
따뜻한 예비처럼 다가왔다.
바람을 막고
햇살을 머금는 창호지처럼
아빠의 손길과 가족의 마음이
마당 가득 퍼져나가던 가을날.
그 계절의 고요한 온기 속에서
우린 또 한 해의 끝자락을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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