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비워둔 밤

by 기억을 뀌메는 사람 황미순


이틀을 온전히
미화로 가득 채운 그는
그 외의 시간들을
그만의 삶으로
다시 채워 넣었다.

일, 사람, 약속,
그리고 미화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시간들.

그의 하루는
조각조각 나뉘어 있었고,
미화는 그중
확실히 이름 붙여진 이틀에만
존재했다.


---

미화는 생각했다.

나도 내 시간을
알차게 보내야지.

일을 하고,
몸을 회복하고,
미뤄둔 관계들을 챙기고.

머리로는
그게 옳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늘 그의 비워진 시간을
계산하고 있었다.

지금쯤 끝났을까.
오늘은 연락이 올까.

그의 하루에
빈칸이 생길 시간,
그 틈에
자신이 들어갈 수 있을지를
미화는 본능처럼 느꼈다.


---

결국 미화는
또다시 밤을 비워두기 시작했다.

약속을 잡지 않았고,
일을 늦게까지 끌지 않았고,
집에 일찍 들어와
전화기 옆에 머물렀다.

그가 연락할지
모른다는 이유 하나로.

그날 밤,
그의 전화가 울렸을 때
미화의 몸은
생각보다 먼저 반응했다.

가슴이 먼저 뛰었고,
손끝이 먼저 떨렸다.

“뭐 해?”

그의 목소리는
늘 그랬듯
아무렇지 않았다.

하지만 그 한마디에
미화는
하루를 통째로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

전화를 끊고 난 뒤
미화는 혼자 웃다가
이내 고개를 떨궜다.

왜 이럴까.

목소리만 들어도
몸이 반응하는 자신이
속상했다.

사랑이라기엔
너무 조건 반사 같았고,
자유의지라기엔
너무 익숙했다.


---

미화는 알았다.

이제 자신은
그에게 시간을 내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의 시간이 열릴 때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낮은
자기 몫으로 채우려 애썼지만,
밤은
여전히 그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미화를
조용히 잠식하고 있었다.


---

침대에 누워
불을 끄고도
미화는 잠들지 못했다.

그의 하루를
상상하며,
그의 빈자리를
채우려 애쓰며.

미화는 스스로에게
조용히 물었다.

이건 사랑일까,
아니면
이미 길들여진 반응일까.

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다만 분명한 건—

미화는
자기 시간을 지키기 위해
사랑을 조절하려 했지만,
결국
사랑이
미화의 시간을
재배치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재배치는
돌이킬 수 없이
밤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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