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대답하지 못한 약속

by 기억을 뀌메는 사람 황미순



결혼하자는 그의 말은
그날 이후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형태를 바꿨을 뿐이었다.

노골적인 고백 대신
농담처럼,
미래 이야기 속에 섞여,
혹은 아무렇지 않은 일상 대화의 끝에
툭— 하고 떨어졌다.

“나중에 우리 집은 말이야.”
“결혼하면 이런 게 좋더라.”
“너 혼자 늙게 두기 싫어.”

미화는
그 말들에
매번 정확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웃음으로 넘기거나,
화제를 바꾸거나,
“그런 말은 나중에 하자”고
애매하게 밀어두었다.

그는 그 애매함을
거절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필요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것처럼 보였다.


---

미화는 혼자 있을 때
결혼이라는 단어를
천천히 꺼내놓고 바라보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늙어가는 삶—
그 상상은
분명 따뜻했다.

하지만 동시에
자기 삶의 모든 리듬이
그에게 맞춰질 미래가
선명하게 그려졌다.

지금도
그의 시간에 맞춰
밤을 비워두고,
그의 속도에 맞춰
몸을 혹사하고 있는데—

결혼은
그 균형을
되돌릴 수 없게 만드는 선택처럼 느껴졌다.


---

어느 밤,
그는 갑자기 물었다.

“너… 나랑 오래 갈 생각 있어?”

미화는
잠시 말을 잃었다.

있다고 하면
결혼이 따라올 것이고,
없다고 하면
지금 이 관계가
무너질 게 분명했다.

그의 눈빛은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지만
이미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화는 결국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지금이 너무 복잡해.”

그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미화는 알았다.
그 대답이
그를 안심시키지 못했다는 걸.


---

그날 이후
그의 사랑은
조금 더 조심스러워졌고,
조금 더 치밀해졌다.

미화의 하루를 더 묻고,
미화의 일정에 더 관여했고,
미화가 비는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더 자주 확인하는 사이—
미화는
숨이 가빠졌다.


---

미화는 스스로에게
처음으로 솔직해졌다.

나는 결혼이 두려운 게 아니라
이 사람과 결혼했을 때의 내가
두려운 거야.

사랑하는 사람의 아내로 살며
자기 자신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그 확신이
미화에게는 없었다.


---

그는 여전히 말했다.

“난 네가 필요해.”
“너 없으면 내 삶이 안 돌아가.”

그 말은
사랑이었고,
동시에
부담이었다.

미화는
그의 필요가
사랑인지,
의존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되어가고 있었다.


---

그날 밤,
미화는 창가에 서서
불 꺼진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사랑은 충분했다.
하지만
대답하지 못한 약속들이
이미
이 관계의 무게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미화는
느끼고 있었다.

이제 곧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질문이
다시 올 거라는 걸.

그때는
웃음으로도,
침묵으로도
넘길 수 없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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