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믿고 싶었던 이유


유독
몇몇 이름만
그의 전화기 위에 남았다.

김ㅇㅇ
이ㅇㅇ
유ㅇㅇ
안ㅇㅇ 이사.

신문과 뉴스에
익숙하게 등장하는 이름들.

그들의 이름이 화면에 뜰 때마다
그는
늘 같은 반응을 보였다.
보았고,
잠시 멈췄고,
그리고 받지 않았다.


---

처음엔
아무 의심도 하지 않았다.

중요한 분들이니까.
사적인 자리에선 받기 곤란한 전화겠지.
내가 옆에 있으니 더더욱.

그렇게 생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는 늘
공과 사를 구분하는 사람처럼 보였고,
미화는
그 배려가
자신을 위한 것이라
믿고 싶었다.


---

다른 전화들은
거의 다 받았다.

직원들의 전화,
후배들의 전화,
일 관련 연락들.

운전 중에도,
식사 중에도,
때로는
미화의 말이 끊길 정도로
그는 성실하게 전화를 받았다.

그래서 더
그 네 사람의 전화가
특별해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중요하니까 안 받는 거야.
지금은 내가 옆에 있잖아.

그 논리는
너무 그럴듯해서
의심이 들어올 틈을
주지 않았다.


---

처음 2년 동안
미화는
그대로, 아주 순수하게
받아들였다.

그의 말보다
그의 헌신을 더 믿었고,
그의 설명보다
그의 행동을 더 신뢰했다.

지방까지 따라오고,
밤을 비워두고,
삶의 일부를
미화에게 내어주는 사람을
어떻게 의심할 수 있을까.

의심은
사랑을 모욕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

미화는
그 이름들을
마음속에서
의미 없는 기호로 바꿔버렸다.

뉴스 속 인물,
먼 세계의 사람들,
자신과는 상관없는 존재들.

그렇게 생각해야
이 사랑이
온전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

하지만
아주 가끔,
아주 미세하게—

그 이름들이
다시 마음을 건드릴 때가 있었다.


그 네 사람의 전화는
항상 같은 방식으로
미뤄질까.


다른 중요한 사람들은
받으면서
그들만 예외일까.

그 질문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미화는
스스로 밀어냈다.

괜히 생각하지 말자.
내가 사랑받고 있는 건
분명하니까.


---

지금 돌이켜보면
그 2년은
믿음이 아니라
선택이었다.

알아차리지 않으려는 선택,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는 선택,
사랑을 지키기 위해
진실을 미뤄두는 선택.

미화는
그 선택이
자신을 얼마나 깊이
묶어두고 있는지
아직 알지 못했다.

다만
확실한 건—

그 이름들은
처음부터
아무 의미 없는 이름들이
아니었다는 것.

그리고
미화가 순수하게 믿어온 시간만큼
그 진실은
더 큰 무게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때까지
미화는 여전히
믿고 싶었다.

사랑이
모든 설명을
대신해 줄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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