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균열
27화. 흔들리는 균열
그날 밤,
미화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불도 켜지 않은 채 소파에 앉았다.
현장에서의 자신은
분명 단단했는데,
집 안에 혼자가 되는 순간
몸속 어딘가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의 헌신은 여전했고
사랑의 말도 줄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미화의 마음엔
설명할 수 없는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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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는 여전히
오지 않는 번호들에서 울렸고,
그는 여전히
받지 않았다.
“중요한 분들이야.”
“지금은 타이밍이 아니야.”
그 말들이
거짓은 아닌 것 같았지만
전부는 아니라는 느낌이
미화의 가슴을
조용히 눌러왔다.
의심을 하자니
그가 쌓아온 시간들이 아팠고,
믿자니
자신을 잃어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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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화는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았다.
사랑 앞에서
늘 담담하던 자신이
언제부터
그의 하루에 맞춰
호흡하고 있었는지.
그가 비는 시간에
자신의 밤을 내주고,
그의 연락을 기다리며
일정표를 비워두는 자신을.
이건 사랑일까,
아니면
사랑이라는 이름의
침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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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날도
늦은 밤 전화를 걸어왔다.
“오늘 힘들었지.”
“내가 옆에 있었어야 했는데.”
다정한 목소리.
익숙한 위로.
미화는
대답 대신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이
그에겐
낯설게 들렸는지
그는 조심스레 물었다.
“미화야…
무슨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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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화는
말하지 못했다.
당신을 사랑하지만
당신 속으로
완전히 들어갈 수는 없다는 말.
당신의 품이
위안이 되면서도
나를 작게 만든다는 사실을.
대신
짧게 말했다.
“그냥…
나 좀 지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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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끊고 나서
미화는 알았다.
이제는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무언가를 선택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아직은
떠날 용기도,
마주할 용기도 없었지만
균열은 이미
선명하게
그어져 있었다.
그리고
한 번 생긴 균열은
사랑이라는 이름만으로
다시 메워지지 않는다는 걸
미화는
조용히 깨닫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