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의 현충일(Remembrance Day)은 11월 11일이다. 우리나라는 한창 빼빼로를 나눠먹느라 난리일 텐데 그곳에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왼쪽 가슴에 poppy(양귀비) 꽃을 달고 다니는 주간이다. 나는 물론 몰랐다. 여기저기 ‘Lest we forget(잊지 않도록)’이라는 문구와 함께 빨간색 꽃이 보이기 시작해서 알게 되었다. 그 꽃이 포피(poppy)라는 것도 자연스레 알게 되었고.. 학교에서도 아이들이 그린 poppy 그림을 복도에 전시하고, 심지어 한가운데 빨간색 poppy가 들어간 동전까지도 발행한다.
퍼레이드 대기 중
우리 만수도 달고 있는 저 빨간 꽃이 바로 poppy인데, ESL선생님께 들은 바로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진흙투성이 전쟁터에서 저 꽃이 피었다고 한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 유럽의 격전지 벨기에 플랑드르에 군의관으로 참전했던 캐나다인 존 매크레라는 사람이 친구가 전사한 플랑드르 들판에 핀 꽃을 주제로 ‘프랑드르 들판에서(In Flanders Fields)’라는 추모 시를 썼다. 이 시에 등장하는 꽃이 바로 포피(poppy), 즉 양귀비꽃이었다. 이 꽃은 전쟁 중 사망하거나 실종된 군인의 상징으로 인식되면서 미국 현충일인 5월 마지막 주 월요일과 영연방 국가의 종전 기념일인 11월 11일을 전후해 국민이 공유하는 추모의 상징이 됐다.
딸아이는 스카우트 캐나다의 일원으로 Remembrance Day에 퇴역군인들, 캐나다 경찰, 소방관 등등 여러 단체와 함께 거리 퍼레이드에 참가했다. 핼러윈 때 trick or treating을 하러 갔던 헤이스팅스 거리에서 길을 막고 거리 행렬을 하고, 참전기념비가 있는 Confederation Park까지 걸어가서 기념식에 참석했다.
헤이스팅스 거리에서 Remembrance Day 퍼레이드
"오~ 캐나다~" 하고 시작하는 캐나다 국가를 부르고 식이 시작되었다. 전사한 캐나다 군인들 이름을 한 명 한 명 다 부르고, 퇴역군인들, 전사자 가족들이 한 명씩 나와서 기념비에 화환을 다 놓고 나서야 식이 끝났다. 서서 보느라 다리는 좀 아팠지만, 생각보다 많은 시민들이 구경을 나와서 좀 놀랐고, 형식적이거나 보여주기 식이 아니라 매우 정성을 들여 진심을 다한다는 것이 느껴져 뭉클한 시간이었다.
한국에서는 이런 행사에 참가해 본 적이 없는데, 여기 와서 별걸 다 해본다는 생각과 함께 가슴 한편이 뜨끔했다.
빨간 제복을 입고 정렬해 있는 사람들이 캐나다의 상징 중 하나인 캐나다 연방경찰 RCMP(Royal Canadian Mounted Police, 기마경찰대)이다. 옹기종기 모여 엄숙히 구경하는 꼬마 스카우트 비버들
우리 7th Mountain 소속 비버 스카우트 아이들은 행사가 끝나고 스타벅스에 가서 핫 초콜릿을 얻어 마시고 해산했다. 퍼레이드는 조금 짧아서 아쉬웠지만, 의미 있는 큰 행사에 일원으로 참가했다는 자부심과 함께 캐나다를 조금 더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을 하나 더 추가했다.
이 지점에서 생각나는 것이 있다. 약간 다른 얘기지만, 캐나다 와서 놀란 것 중 하나가 '묘지'다. 우리나라와 다르게 그냥 동네 한가운데 공동묘지가 있다. 근데 전혀 혐오시설의 느낌이 아니라 푸르른 공원의 느낌이다. 봉분이 없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어느 날 버나비와 밴쿠버 경계 쪽에서 차로 언덕길을 내려가다 '우와, 저 드넓은 잔디밭은 뭐야. 엄청 넓은 공원이 있네' 했는데 그게 바로 공원묘지였던 것. 묘지가 있다고 해서 사람들이 꺼려한다거나 집값이 떨어진다거나 하지 않는다고 한다. 심지어 어느 초등학교는 공원묘지와 맞닿아 자리 잡고 있기도 했다. 들은 바로는 죽음도 삶의 일부로 생각하는 그들의 사고방식 때문이라나..
나도 언젠가 친정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선산이 있는 용인에 내려가 가까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사랑하는 가족이 가까이 잠들어 있어 언제든 가고 싶을 때마다 쉽게 갈 수 있고 추모할 수 있다는 건 혐오시설이 아니라 축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