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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윤작가 Jun 26. 2021

16_버나비 우리 동네

우리가 사랑한 그곳들

처음 만난 캐나다의 우리 동네.. 평생 서울 변두리에서 벗어나 살아본 적이 없던 나는 이렇게 맞닥뜨린 낯선 느낌이 사실 신선하고 좋았다.  


Stoney Creek Trail

스토니 크릭 숲은 버나비 마운틴의 한 자락이며, 아이 학교가 있는 곳이다(학교 이름도 스토니 크릭이다). 우리 집에서 길만 하나 건너면 금방 연결되는 곳이었는데, 걸어 다닐 때는 이 숲길을 통과해서 학교를 다니곤 했다. 우리가 너무나 사랑한 숲길.. 많은 사람들이 이 숲길에서 집채만 한 대형견과 함께 산책하곤 하는데, 그렇게 큰 개들은 캐나다 와서 처음 보았다. 땅덩어리가 커서인가 주택에 사는 사람들이 많아서인가 우리나라에서 키우는 작은 개들보단 압도적으로 대형 견들이 많다.



아이 학교 운동장으로 이어지는 스토닉크릭 트레일



그리고 또 여기는 곰이 많단다. 가끔 출몰하기도 한단다. 그럴 땐 아무래도 큰 개와 다니는 것이 안전하겠지.. 아이 학교가 이 숲 한 자락에 있다 보니 학교 운동장에도 곰이 나타나 비상이 걸린 적이 있었다. (쉬는 시간마다 나가 노는 운동장을 못 나가고 실내에만 있어야 했단다.)


여름에는 숲길 양쪽으로 빨갛고 까만 온갖 베리(berry)들이 열렸다. 호기심에 따먹어 봤는데 엄청 시고 입이 빨개지거나 까매졌다. 비가 오고 난 뒤에는 어김없이 등장하는 민달팽이를 피해 다니는 것도 일이었다. 캐나다 가서 처음 본 애들인데, 어찌나 징그러운지.. 크기는 또 얼마나 큰지.. 비 오고 난 뒤의 숲은 온통 민달팽이 지뢰밭..   


creek(개울, 시내)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그 숲에는 creek이 있고 이 크릭은 연어가 회귀하는 곳이다. 그래서 시내 주변엔 ‘연어 보호지역’이라는 푯말이 여기저기 붙어 있고, 가을이면 여기로 연어들이 올라온다. 봄에는 그곳에서 새끼 연어들을 방생해주는 지역 행사가 열렸고, 가을에는 학교 가는 길에 작은 다리에 서서 개울을 내려다보며 연어를 열심히 찾곤 했다. 노래에서만 듣던 ‘힘차게 거슬러 올라가는’까지는 아니더라도 여기저기 연어들을 발견했을 때의 희열이란..  



어느 가을 날 개울에서 만난 연어




Burnaby Mountain Park

캐나다 와서 얼마 안돼 같은 학교 이민자 엄마가 데려가 준 버나비 마운틴(Burnaby Mountain)은 집에서 차로 10분 정도 거리의 산이었는데, 멀리 밴쿠버 시내와 노스밴쿠버까지 보이는 경치가 너무나 멋진 곳이었다. 우리나라 산처럼 등산으로 걸어 올라가는 곳이 아니라 산 정상까지 차로 갈 수 있고 주차장 시설도 잘 되어 있으며, 위에는 벤치며 놀이터며 시설과 조경이 잘 되어 있는 공원이다. 처음 갔던 그날 산 올라가는 길에서부터 홀딱 반하여, 지금도 너무나 그리운 나의 최애 장소 중 하나다. 산 위에서 보는 경치뿐 아니라 차로 내려오는 길에, 사시사철 하얗게 눈 덮인 미국의 베이커 산이 정면에 보이는 광경은 정말 현실감이 없을 정도다. 산 한복판에는 캐나다 서부 명문 대학 중 하나인 SFU(Simon Fraser University)가 있고 UniverCity라는 신도시 같은 주거단지도 형성되어 있어 내가 부러워하던 곳이다.


처음 갔던 그날,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잔디밭에서 맨발로 뛰어놀던 아이들이 어찌나 예쁘던지.. 내 기억 속에 강렬히 박혀 있는 눈이 시릴 만큼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다. 그날 그곳에 우릴 데려가 주었고 2년 내내 많은 도움을 주었던 HJ네 정말 고마워~

 



Burnaby Lake / Deer Lake

버나비에서 가장 유명한 호수 두 개를 꼽으라면 버나비 레이크와 디어 레이크일 것이다. 집에서 차로 10분~15분 정도 거리에 있었는데, 우리 집에서 좀 더 가까운 Burnaby Lake가 훨씬 크고 좀 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그에 비해 규모가 좀 더 작은 Deer Lake는 아기자기하고 예뻤다. 데크 산책로도 좀 더 예쁘게 꾸며져 있었고 무엇보다 주변 광경이 예뻤다. Deer Lake는 버나비의 중심에 있다 보니 민속촌 같은 Burnaby Folk Village나 미술관, 아트 센터 같은 공공시설이 주위에 있어 아름다운 건물과 자연의 조화가 예쁜 곳이었다. 한 때 아이가 아트 센터로 연극 수업을 받으러 다녔기에 Deer Lake도 추억이 많은 곳이다.


 

처음 사진은 버나비 레이크, 나머지는 디어 레이크



Cameron Library & Recreation Centre

한마디로 동네 사랑방이자 우리의 참새방앗간..

난 캐나다 있는 동안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을 200% 절감했다. 우리가 사는 콘도 바로 길 건너에 카메론 도서관이 있었는데, 이게 신의 한 수였던 것. 도서관이 이렇게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지 않았다면 우리가 도서관을 그렇게 자주 드나들지는 않았을 것. 이건 안 봐도 비디오다.


이곳은 버나비 시립 도서관의 분관이며 지역 공동체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주민센터 같은 곳이다. 한 번에 빌릴 수 있는 책의 양도 많고(내 기억에 15권이었던 듯), 기간도 열흘로 넉넉하여 책 빌려 읽는 재미가 참 쏠쏠했다. 피트니스 클럽뿐 아니라 남녀노소를 위한 다양한 강좌가 개설되어 있었고 체육관에다가 넓은 공원까지 있어 한마디로 동네 사랑방 같은 곳이었다.


학교를 걸어 다닐 때는 항상 그 앞 횡단보도를 건너기 때문에, 오며 가며 공원에서 놀고 가거나 도서관에 들러 책을 보기도 했으며, 영어가 조금 되는 시점부터는 방과 후 수업도 등록해서 다녔던, 우리에겐 참새방앗간 같은 곳이었다. 봄이면 공원 잔디밭에 노란 민들레가 잔뜩 피어 연두색과 노란색의 향연을 보여주었고, 딸아이가 ‘Angela Tree'라고 자기 이름을 붙여줄 만큼 좋아하던 웅장하게 키 큰 나무도 있는 우리가 참 좋아한 곳이다.



카메론 도서관과 주변 공원


딸아이는 지금도 눈을 감으면 우리가 살던 동네를 생생히 떠올릴 수 있다고 한다. 어렸을 때여서 많이 잊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눈을 감으면, '카메론 도서관에서 왼쪽 오솔길로 들어가 쭉 걸어가면 다리가 나오고 그 다리를 건너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발자취를 추억해보곤 한다. 내년이면 캐나다에서 돌아온 지 10년이 된다. 많이 안 변해있길 바라보지만.. 이미 강산이 꽤 변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아이가 내년에 목표한 대학에 합격하면 캐나다 여행을 가자고 공약을 걸었는데.. 움.. 움.. 꼭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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