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유학을 생각한 건 아주 일찍이.. 결혼 훨씬 전으로 거슬러 간다. 영어를 전공하고 업으로 삼아 지내면서 죽어도 영어가 모국어처럼 될 수는 없다는 좌절감에서 비롯되었다. 영어를 접하고 산 세월이 얼마인가.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영어가 안 들렸고 말이 잘 되지 않았다.
교육학을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던 ‘결정적 시기 가설(Critical Period Hypothesis).’ 만 12세 정도까지는 외국어를 모국어처럼 습득할 수 있지만, 그 나이가 지나면 외국어를 ‘습득’할 순 없고 ‘학습’, 즉 공부로 익혀야 한다는.. 언어 습득에는 '결정적 시기'가 있다는.. 교육학에서는 유명한 이론.
나의 학창 시절이 떠올랐었다. 부모님 따라 미국에서 2년 살고 왔다는 그 아이는 별로 노력하지 않아도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 상을 받고, 발음도 쏼라쏼라 미국인 같고.. 얼마나 부러워했던지..
결정적 시기 _ 출처: 다음 백과
* 결정적 시기 (Critical Peroid) : 인간의 발달 단계에서 여러 발달 과업들이 획득되는 최적의 시기. 언어·심리·인지·신체 발달에는 결정적 시기가 있다고 인정되며, 이러한 시기를 놓칠 경우 미흡한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결정적 시기가 언제이며 그 영향력의 정도는 어느 정도인가는 영역과 개인차에 따라 차이가 있다. (출처: 다음 백과)
그래서 막연히 난 나중에 내 아이가 어렸을 때 꼭 영어권 나라에 데리고 가서 2년 정도 살고 오리라, 내 아이에게 반드시 영어 nativeness를 갖게 해 주리라, 그래서 평생 영어로부터 편하게 해 주리라 다짐했었다. 사대주의에 찌들었다고 욕먹을 수도 있겠다. 아마 나의 한이 꽤 컸던 모양이다. 하긴 여전히 영어가 자유롭지 못하니... 결혼을 하고 남편에게 나의 간절한 뜻을 전하여 진작부터 동의를 받아 두었었다. 치밀하게.. 움화화화..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고, 빠듯한 살림에 조기유학 같은 건 꿈도 꾸질 못할 형편이었지만, 나는 꿈을 꾸었다. 아이가 3학년 때 갈까, 4학년 때 갈까 고민하면서..
돌잡이에 영어책을 끼워 넣은 건 나의 빅픽쳐? ㅎㅎ 사실 별 의미 없이 놓았는데 그걸 집을 줄이야.
그런데 그 ‘때’는 생각보다 빨리, 얼떨결에 찾아왔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2010년 2월쯤, 회사와 가정에서 전환점이 될만한 변화가 찾아왔고 그 틈에 조기유학을 실현시켜보자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사실 내가 생각했던 시점보다 많이 일렀기에 고민이 되었으나 기왕 가보기로 한 거 좀 당겨서 갔다 오자 했다.
가장 힘든 건 사실 나의 커리어를 포기하는 것이었다. 돌아오면 40대 중반이 되는데 다시 일을 잡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가장 컸다. 나는 그때 영어연구원으로 영어 교재 개발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커리어를 꽤쌓은 상태였기에 그걸 포기하는 일이 참 힘들었다. 집이 부자도 아니고, 2년 간 돈을 벌지 못하는 데서 오는 기회비용이나 무지막지한 유학 비용(환율이 지금 같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돌아온 다음의 나의 미래, 가족과의 생이별 등에 대한 걱정으로 막상 유학을 추진하면서 설렘 20, 걱정 80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난 결국 일을 저질렀다. 그리고 그 이후 지금까지 그 결정을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