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2010년 8월 25일. 외갓집-oriented 삶을 살던 만 6살의 어린 딸이 그 안정된 보금자리를 떠나 엄마와 단둘이 낯선 땅 낯선 삶에 던져졌던 그날..
출국 전날부터 친정 엄마, 아버지와 우리 세 식구는 모두 슬픔을 속인 채 태연한 척 여전히 딸의 재롱을 보며 웃음 짓고 있었다. 남편과 친정 엄마와 함께 공항 가는 길에 들렀던 중국집에서 딸은 천연덕스럽게 그때 한창 유행이던 백지영의 ‘잊지 말아요’를 열창했다. 겉으론 웃었지만 속으론 정말 잊지 말라는 당부를 했다.
공항에 마중 나온 이모 이모부 올케언니 등 친척들까지 모이니 차츰 우리가 떠난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까진 아무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딸이 공항에 나오지 않았던 외할아버지(나의 친정아버지)와 통화를 하기 전까지는..
외할아버지와 통화를 하던 어린 딸이 갑자기 울먹거리기 시작하더니 펑펑 눈물을 쏟는 것이 아닌가.. 그걸 지켜보던 모든 가족 친지들까지 울음바다.. 워낙 가족 친지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던 아이라 현실로 훅 다가온 이별의 슬픔이 꽤 컸던듯..
출국장 안에 들어가서 보니, 남편이 유리벽 아래 쭈그리고 앉아 빈틈으로 여전히 우리를 뒤쫓고 있다. ㅠ.ㅠ 우는 아이를 달래며 열심히 면세점을 뒤져 예쁜 색깔 나는 립글로스 하나를 사주고 기분 전환을 시켜 주었다.
우리가 타고 간 에어캐나다 비행기
길게 슬퍼하기엔 아직 너무 어린 딸. ㅎㅎ 립글로스 하나에 웃음을 되찾고, 밴쿠버까지 긴 비행길에 올랐다. 10시간을 넘게 가는 하늘길에서 한 번도 잠이 들지도 졸지도 않고 내내 종이접기를 하던 아이.. 한국말 나오는 만화가 없는 Air Canada였기에 영어 만화영화를 조금 보기는(영상만) 했지만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작품 활동에 몰두하셨다는.. 종이접기 책에 나온 거의 대부분을 접은 듯하다.
밴쿠버 공항에서 비자를 받기 위해 한 시간 이상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아! 서비스는 역시 한국이 최고!’를 벌써 느끼고.. 한 시간 이상 서 있던 사람이 차례가 되었음에도 앞에 세워두고 옆 사람과 중요하지 않은 듯 들리는 잡담(?)을 나누는 여유를 보이다니.. ‘한국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야’ 하며 열 받고..
드디어 유학생 비자와 동반 비자를 받고 우릴 마중 나와 오랜 시간 기다리고 있던 유학원 관계자를 만나, 미리 구해두었던 캐나다 우리 집으로 향했다.
밴쿠버 첫날밤 우리 아파트 건너편에 떠올랐던 보름달을 기억한다. 아직 생활집기를 사기 전이어서, 서울에서 갖고 갔던 얇은 이불을 거실 맨 마룻바닥에 깔고 덮고 캠핑 온 듯 첫날을 보냈다.
밴쿠버 첫날밤 우리 집 발코니에서
아무것도 없이 휑한 집에서 단둘이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지냈던 첫날밤이 1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