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공항에 우리를 마중 나온 교포분에게 약 3일간 정착 서비스를 받았다. 물론 정착 서비스를 굳이 받지 않고 스스로 해결해도 된다. 나의 경우는 어린 딸을 데리고 낯선 곳에서 이리저리 다니며 볼일 보는 게 쉽지 않겠다 싶어 그냥 돈 쓰고 편하자 생각했었다. 그분과 가장 우선적으로 한 일은 다음 3가지였다.
핸드폰 개통 / 운전면허증 교환 / 은행 계좌 개설
핸드폰은(그때는 아직까지 2g 폰이 대세이던 시절, 스마트폰이 막 나왔던 무렵이다) 2년 정도만 사용할 거니 예쁜 거, 좋은 거 할 필요가 굳이 없겠다 싶어 우리나라 기업의 무료폰으로 결정.
캐나다 번호의 특징은 집 전화번호와 핸드폰 번호의 구분이 없다는 거였다. 지역 번호로 국번을 지정해서 밴쿠버는 집이든 핸드폰이든 상관없이 604 아니면 778로 시작하였다. 지금은 그것도 포화상태라 번호가 추가되었다는 기사를 본 듯하다. 그리고 요금제에 따라 받는 전화도 수신자가 요금을 부담한다는 게 우리나라와 또 다른 점이었다. 요금도 우리나라보다 꽤 비쌌던 것 같다.
캐나다 운전면허증은 한국 영사관에 먼저 가서 우리나라 운전면허증 공증을 받은 다음 ICBC(Insurance Corporation of British Columbia, 캐나다는 자동차보험이 공기업이란다. 즉 자동차보험을 여기서만 들어야 한다)에 가서 한국 운전면허증을 제출하고 신청한다. 시력 검사와 간단한 시험(우리나라와 다른 몇 가지 규정이 있는데 주로 그걸 묻는다고 정착 서비스한 분이 힌트를 주셨다. 덕분에 통과)을 보고 그 자리에서 사진을 찍었다. 도착한 바로 다음 날이라 (시차로 인해) 겨우겨우 일어나자마자 나간 바람에 한 마디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사진이 무슨 범법자 같다.. ㅎㅎ
은행은 한인 상가에 있는 은행에서 계좌를 만들었다.(계좌 개설 시엔 미리 예약하여 약속 잡고가야 한다나) 우리나라 은행과 또 다른 점이 매달 계좌관리유지 비용이 나간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비용이다 보니 어찌나 아깝던지.. 데빗카드(체크카드)를 발행받고, 개인 수표책도 받았다. 지금도 많이 사용하는지 모르겠는데, 개인 수표를 쓰는 일이 참 많았다. 특히 학교에 자잘하게 돈 낼 일이 꽤 많은데 현금으로 내기도 했지만 간편하게 금액 써서 한 장으로 해결하는 개인 수표가 참 편리했다. (덧붙이자면, 당시 한국에선 학교에 계좌를 등록하여 자동으로 빠져나가는 시스템이었다.) 한 묶음에 50장 들어있었던 것 같은데, 첫 거래여서 무료로 받았지만 다 쓰고 나면 수표책을 구입해야 한다.
개인 수표 샘플_TD Bank 사이트에서 빌려옴_TD(Toronto-Dominion)는 본래 캐나다 은행으로 캐나다에서는 TD Canada Trust라고 부른다
생필품 구입
집에서 당장 사용할 가구와 소품 등을 사러 이케아에 갔다. 침대 매트리스(생각해보니 프레임 없이 살아도 되겠다 싶었다)와 식탁 세트, 거실과 방에 둘 스탠드 등을 우선 샀다. 캐나다 집들은 대체로 주방과 다이닝 공간, 화장실만 전등이 설치되어 있고 다른 곳은 없어서 스탠드를 사서 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냉장고, 전자레인지, 전기레인지(많은 집이 가스레인지가 아니라 전기레인지를 사용한다), 커피메이커 등은 이미 집에 포함되어 있고, 집안 곳곳에 있는 벽장 덕분에 수납은 널널했다.
필수 가전이 구비되어 있고 동선이 편했던 주방
그다음에는 한인마트에 가서 밥솥과 자잘한 주방용품들을 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그 밥솥은 바다 건너갔다고 가격이 몇 배였다. 전압 때문에 안 사 갖고 갔는데 가장 후회했다. 그리고 한인 슈퍼에서 당장 필요한 쌀, 김치 등 필수 식재료도 구입했다. 쌀은 시애틀에서 오는데 한국보다 저렴했다. 항상 쌀과 고기는 한국보다 저렴하여 행복했다는..
버티고 버티다 자동차 구입
정착 서비스 마지막 날 드디어 대망의 자동차를 구입했다. 어떻게든 차 없이 살아보자 싶었던 지라 정착 서비스해 주시는 분과 논쟁 아닌 논쟁을 했었다.
“차 안 사고 살 수 없을까요?”
“아이 학교는 어떻게 데려다주시려고요?”
“걸어가면 되죠.” (학교가 차로는 5분 정도, 걸어서는 15~20분 정도의 거리였다.)
“학교에서 어디 가거나 하면 어떻게 하시게요?”
“얻어 타고 갈 수 없을까요?”
“마트에서 쌀은 어떻게 사오시게요?”
“……”
그렇다.. 차를 사야 할 이유는 무궁무진했다. 아니 차를 사지 않고는 배겨낼 수가 없는 거였다.
아이 학교 가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학교가 숲에 있어 오히려 걸어가는 게 상쾌하고 즐거운 길이었다. 하지만, 방과 후에 무슨 학원 하나를 다니려고 해도 차로 움직여야 했고 병원을 가거나 누구 집을 가거나 해도 차로 움직여야 했다. 게다가 마트가 좀 많은가. 그 다양한 곳곳의 마트들을 다니려면 차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던 것. 캐나다에서의 나의 삶은 한마디로 라이드 인생이었다는..
결국 3일째에 현실을제대로깨닫고 3년 된 상태 좋은 중고차를 구입했다. 나중에 돌아올 때를 생각하여 가장 되팔기 좋다는 인기 있는 차로.. 문제는 나의 운전 실력. 오기 전에 연수를 받고 왔음에도 도저히 운전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야말로 맛보기 연수였던..
차를 받아온 첫날부터 아파트 주차장에서 벌써 기둥에 긁어 뒤 범퍼에 보기 좋게 엉덩방아 자국을 내고야 말았다. ㅠ.ㅠ 어찌나 속상하던지..
우리나라보다 운전이 몇 배는 쉽다는 캐나다지만.. 결국 한인 운전강사분을 소개받아 며칠 연수를 받고 드디어 나의 라이드 인생이 본격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