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로 당신을 지치게 할 수 있다. “자영업자.” 임대료 내기에 급급하고, 남들 쉴 때 못쉬고, 텅 빈 매장에서 우두커니 앉아 손님을 기다리고, 경기불황에 장사가 안돼 허덕이고, 서민 대출 창구를 들락거리다 눈물을 훔치며 폐업을 하는 소상공인 자영업자. 자영업을 오래 하다 보면 그 뭐랄까, 특유의 ‘찌듦’이 몸에 밴다는 말이 있을 정도.
말 한마디로 당신을 힘나게 할 수도 있다. “개척자.” 새로운 영역, 운명, 진로를 처음으로 열어 나가는 사람. 스스로 걸어 나가겠다는 결의와 낭만이 새겨져 있다. 개척자는 외로움 속에서 작은 불씨를 지피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며 앞으로 나아간다. 자신의 혼자 힘으로 자신만의 사업을, 자신만의 삶을 경영하는 자, 말하자면 자영업자.
사는 시간이 따로 있고 삶을 증언하는 시간이 따로 있다. 알베르 카뮈가 <결혼·여름>(1989)에서 쓴 글귀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증언’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거칠고 힘겨운 생계 속에서 우리는 곧잘 그냥 ‘사는 시간’으로 도피한다. 회사가 꼬박꼬박 안겨주는 월급의 안락함 속으로, 출퇴근길 의미 없는 숏츠 영상 속으로, ‘사는 시간’이 주는 무력한 편안함 속으로 숨어 들어가곤 한다.
자영업자들이 대단한 개척자는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생계’ 자체를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삶의 증언과 직결한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자영업의 세계에선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자생과 자멸의 극단을 오가며 자신의 브랜드, 자신의 세계관을 구축한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1년 전 와인바를 차렸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것들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을 결심한 사람들이 가진 이유와 결심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직장인의 뻔한 미래, 한 번 사는 인생, 자신만의 브랜드, 대박, 삶의 낭만과 생활의 자유. 이런 이유들을 여기서 나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런 이유들은 이미 수많은 책과 다양한 콘텐츠에서 유통되어 온 지 오래다.
여기 실린 글들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다른 사람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교차해 보고 싶었다. 가게를 운영하며 느낀 소소한 소감과 깨달음, 도움이 될 만한 정보와 경험을 적절히 섞고 내가 직접 그린 그림으로 가니쉬해 나름 괜찮은 빵, 아니 에세이를 베이킹해보고 싶었다.
고작 자영업 1년차의 일상과 소감을 과대포장하고 싶지는 않다. 고군분투, 우여곡절, 각자도생과 같은 뜨겁고 과격한 언어로 읽는 사람들의 파토스를 거칠게 휘젓고 싶지도 않다. 사람들의 감성을 무리하게 끄집어 올리며 정제되지 않는 힐링 메시지를 던지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다.
자영업자. 나를 지치게 한다. 하드보일드한 삶 속에서 ‘자생’해야 하는 라이프 스타일이 종종 버겁다. 자영업자. 힘을 북돋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구축한 세계에 누군가를 초대하고 이들과의 따뜻한 로맨스를 꿈꿔본다. 다시 일어선다. 주저앉는다. 그리고 다시 일어선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지만 뭐라도 할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삶에 대한 로맨스를 포기하지 않는 한,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은 하드보일드, 결론은 로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