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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크 타이프 Sep 11. 2018

자기 싫어 쓴다

찜통 같은 더위가 지나갔다. 언제 그렇게 더웠냐는듯 밤이 되면 제법 서늘하다. 설익은 가을밤이 다시 찾아온 것이다. 가을밤처럼 완벽하고 세련된 시간이 또 있을까. 덥지도 춥지도 않은 완벽한 균형을 갖춘 가을날씨, 거기에 고요한 밤이 더해지니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중압감, 뭘해도 좋을 편안함이 동시에 찾아온다.


혹자는 하나의 신세계를 구축한 세기의 사건은 산업혁명이라 말한다. 산업혁명은 보통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반, 그러니까 1760년에서 1820년 사이에 영국에서 시작된 기술의 혁신과 새로운 제조공정으로의 전환을 일컫는다. 증기기관 발명을 통한 대량생산의 시작을 산업혁명의 출발점으로 본다(위키페디아).


하지만 나는 산업혁명보다 더 격렬한 사건은 '전구(light bulb)'의 발명이라고 생각한다. 전구는 '밤'이라는 죽은 시간을 살린 하나의 혁명일 뿐 아니라  거대한 재창조였다. 그런 의미에서 에디슨은 위대한 발명가를 넘어선 신에 가까운 인물이라 생각한다. 독일의 역사학자 에밀 루트비히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발견한 이후 인류는 두 번째 불을 발견한 것이다. 인류는 이제 어둠에서 벗어났다."


1879년 미국 뉴저지주 멘로파크 연구소에서 에디슨은 최초로 백열전구를 밝혔다. 흔히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에디슨은 진짜 발명품은 전구 속의 필라멘트였다고 한다. 에디슨이 태어나기 전인 1800년대 초반부터도 전구의 형태는 있었다(경향신문, 1210.12.02."어제의 오늘, 1879년 에디슨 백열전구 발명"). 에디슨의 발명에서 중요한 점은 전구의 수명, 즉 빛을 밝히는 시간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물론 무엇인가를 직접 태워 만들어 낸 원시적 '불'도 밤을 빛으로 밝히긴 했다. 하지만 불의 발명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신의 영역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불의 '발견'이라 말하지 불의 '발명'이라 말하지 않는다.


전구의 발명 이후 인간은 밤을 재해석했고, 밤이 가지는 새로운 가치를 끊임없이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러한 밤의 가치가 무한으로 확장되는 공간이 바로 '도시'다. 도시의 밤이 아름다운 이유는 어둠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어둠 속의 빛이 있기 때문이다. 잠들지 않는 도시는 밤에 대한 하나의 거대하고 아름다운 저항 그 자체다.


물론 밤에는 잠을 자야 한다. "잠을 잔다는 것, 그것은 하찮은 기술이 아니다. 다음 날 종일 깨어 있으려면 꼭 잠을 자야 한다"(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p.39). 밤에 하는 활동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전히 '잠'이다. 그래서 밤잠을 설친다는 것은 종일 깨어있어야 하는 내일을 담보로 한 위험한 도박일지 모른다.


다음 날 깨어있어야 할 낮을 포기할 만큼 소중한 밤을 보낸 적이 얼마나 있던가. 다음날 'nine to six'까지 정신 차리고  밥벌이를 해야 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그럼에도 새벽까지 술을 마신다. 깨어있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라디오를 듣고, 게임을 하고, 운동을 하고, 영화를 보고, 야동을 보고, 사랑을 나누고, 야식을 먹고, 드라이브를 하고,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불행히도 밤까지 일을 하는 고난의 행군을 지속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무튼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뭘 해도 좋은 가을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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