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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크 타이프 Jul 04. 2019

[서평] 정영수 단편 소설 <우리들>

그 무엇도 말하려 하지 않는...

<2019년 제10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실려 있는 정영수의 단편 소설 <우리들>은 어떤 '애매함'에 대한 소설이다. 이를테면 '사랑'이라는 애매한 원인 - 때로는 결과 - 을 처리하는 방식을 몰라 헤매는 주인공 '나'의 이야기다.


줄거리

출판 경력을 가졌다는 이유로 주인공 '나'에게 연락한 이들은 정은과 현수였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보고 싶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다. 나는 정은과 현수가 "삶에 능숙한 사람들"이며, "진짜 어른의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여 흔쾌히 그들의 제의에 동의한다.


책의 원고를 주고받으며 세 사람은 해방촌에서, 부암동에서 술을 마시고, 드라이브를 하며 빛나는 '여름'을 보낸다.


정은과 현수, 이 커플과 함께 하면서 주인공 '나'는 헤어진 연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나와 연경이 관계 맺던 방식과 그 두 사람의 관계 형태에서 극적 대비를 발견"했기 때문일까.


그런데 정은과 현수 커플은 한 가지 비밀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바로 각각 가정이 있는 기혼자들이었다는 점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되면서도 나는 여전히 그들을 존중하고 좋아했지만, 오히려 이런 "아무것도 바꾸지 않음" 때문에 그들의 관계가 "전과 다른 양상으로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결국 정은과 현수는 각자의 가정으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하고 이들의 '책 쓰기' 프로젝트는 무산된다. 나는 이들 커플이 제공했던 어떤 '세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직감한다.


여름은 지나갔다. 그해의 모든 태풍이 소멸했고, 모든 매미는 울음을 그쳤고, 아이들은 모두 물에서 나왔다. 그게 다였다.
- 정영수 , <우리들> 중


소설 분석

소설 <우리들>은 '캐릭터'형 소설이라 할 수 있다. '플롯'형 소설이 서사와 줄거리, 사건 중심의 소설이라면, '캐릭터'형 소설은 주인공 및 주변 인물의 '감정'과 '내면'에 집중하는 소설이다. 김연수 작가의 말처럼 "캐릭터 중심의 소설은 내면적이고 사건의 진행이 느리며, 플롯 중심의 소설은 외면적이고 사건의 진행이 빠르다. 캐릭터형 소설은 독자들이 각자의 '감정'을 창조하는데 도움을 주는데 소설 <우리들>은 바로 이러한 감정의 미세한 흐름에 집중하고 있다.


작가의 말처럼 이렇게 "감정적이고 감상적이기만 한 소설"이면서 어떤 메시지를 주고자 함인지 명확히 알 수 없는 <우리들>의 뜻하지 않은 매력은 '솔직한 애매함'이다. 애초에 애매한 것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해석하려 노력하지 않고 애매한 것을 애매한 대로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건 그 자체로 의미를 품고 있지 않은, 그저 질량이 있고 푹신거리는 단어일 뿐이라고 느끼곤 했다.
- 정영수, <우리들> 중

<우리들>의 메시지가 무엇일까, 고민할 필요는 없다. 이 책이 독자에게 부여하는 것은 어떤 '결론'이 아니라 '감정'이다. 애매하지만 그 나름대로 존재의 이유가 있는 '추억'들과 그것들에 대한 감정들, 사람들에 대한 인상과 기억들, 그런 것들에 대한 개연성을 주인공 '나'와 헤어진 여인 연경과의 지나간 '사랑'으로 연결하고 있다.


다만, 작가 자신의 고백처럼 "전통적인 방식으로 소설을 쓰는" 것이 "지루한 감정 토로만 끊임없이 늘어놓고" 있는 것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우리들>의 '소설적인' 것이 박범신 소설가의 말처럼 "나약한 현대인들의 섬세한 내면을 감성적 이미지에 의존해 표출해온, 내면화 경향의 '90년대식 소설'들"(박범신,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 추천사 중)의 특징이자 한계에서 못 벗어나는 건 아닐까.


그러나 무기력한 현대인의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미묘하고 애매한 감정들에 공감한다면, 소설 <우리들>의 '소설다움'을 부정할 이유는 없다.

 

소설은 감정을 깊게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그것은 소설이 아니다.
- 리차드 바우쉬


마지막으로 소설 <우리들>에 등장하는, 소설 속 인물들이 함께 했던 장소들이 기억에 남는다. 이 장소들은 동시대인들의 섬세한 감수성을 활발하게 생산하고 있는 곳들이다. 상수동 카페, 서교동, 은평구 신사동, 시청 앞, 녹사평, 해방촌 카페, 종로와 북악산, 부암동 골목길. 이러한 강북 쪽의 공간들 역시 "질량이 있고 푹신거리는" 어떤 감성적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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