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참견과 배은망덕과 오만불손과 이기심을 대하게 될 것이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하루는 시작하라. 오늘도 나는 참견과 배은망덕과 오만불손과 불성실과 악의와 이기심을 대하게 될 것이다. 모두 선이나 악에 대한 무지에서 기인하는 일이기는 하지만...죄인도 이성과 신성의 일부를 우리와 꼭 같이 부여받은 동료 인간이란 뜻에서 나의 형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어떤 행위도 나를 손상시키지 못한다.
"오늘도 나는 참견과 배은망덕과 오만불손과 불성실과 악의와 이기심을 대하게 될 것이다." 아우렐리우스는 다가올 하루의 불편한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직시했다. 마치 누군가 아침 식탁에 앉아 익숙한 잔에 커피를 따르듯, 그는 미리 예견된 일상과 마주할 준비를 마쳤다.
우리의 어느 날 아침을 상상해보자. 출근길에서 불쑥 던져지는 불필요한 조언. 그것은 자신만의 기준으로 타인의 삶을 재단하려는 작은 참견에 지나지 않는다. 한때 도움을 받고도 돌아서면 마치 없었던 일처럼 망각하거나, 심지어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배은망덕한 태도를 목격하기도 한다. 작은 권력을 쥐고 휘두르며 타인을 깔보는 오만불손한 모습, 약속을 가볍게 여기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불성실한 행동 또한 세상의 흔한 일상이다. 때로는 타인의 불행을 즐기거나 은밀히 해를 끼치려는 악의를, 그리고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고 배제하는 이기심을 마주하기도 한다. 이런 모든 행위들은 마치 잘 조율되지 않은 악기들이 내는 불협화음처럼, 우리의 평온을 위협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아우렐리우스는 이 모든 것에 대해 하나의 해석을 덧붙인다.
"모두 선이나 악에 대한 무지에서 기인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렇다. 그들은 무엇이 진정한 선이고 무엇이 궁극적인 해악인지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다. 자신의 행위가 가져올 결과를 명확히 알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마치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작은 새처럼,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 부유하는 것과 다름없다. 혹은 자기 안의 결핍을 채우려는 서툴고 불완전한 몸짓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따라서 그들을 향한 우리의 시선은 분노나 좌절에서 멈추지 않아야 한다. 아우렐리우스는 강조한다. "죄인도 이성과 신성의 일부를 우리와 꼭 같이 부여받은 동료 인간이란 뜻에서 나의 형제이다." 비록 그들이 지금은 혼돈 속에 있거나, 잠시 길을 잃은 작은 배처럼 표류하고 있을지라도, 우리와 같은 존재로서 이 하늘 아래를 걷는다. 그들 안에도 이성과 신성이라는 맑은 샘이 흐르고 있으며, 다만 지금은 흙과 낙엽으로 가려져 있을 뿐이다. 그들은 단지 지금, 그 근원을 찾지 못했거나, 잠시 잊었을 따름이라고 생각하자. 우리가 함께 하는 것 자체가 자연법칙의 일부다. 분개하고 다툴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외부에서 일어나는 어떤 행위도, 우리 내면의 평화와 존엄성을 감히 손상시킬 수 없다. 외부의 소음은 결코 우리 안의 고요함을 파괴할 수 없는 법이다. 타인의 행동은 그들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 자신의 빛을 가릴 수는 없다. 우리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이것은 마치 변함없이 떠오르는 태양처럼, 우리 안에 존재하는 흔들리지 않는 진실이다.
잊지 말자.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일어나는 어떤 행위도 나를 손상시키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