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다 버릴 수 있는 사랑

<동호> 4편

"엄마... 어디 갔어? 아빠, 엄마.."


오랫동안 건설현장에서 일을 해야 하는 동호의 직업 때문에 젊을 적에 얻었던 그의 아내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동호와는 현장에서 일적으로 만났다. 디자이너로서도 좋은 센스를 가지고 있었지만, 동호의 눈에는 그녀처럼 아름다운 사람이 없었다. 그녀를 저녁식사에 초대하고 그 초대에 응했을 때는 정말 하늘로 날아갈 듯이 기뻤다. 그렇게 그들만의 데이트가 시작되고 만난 지 1년 만에 그들은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을 해서도 그들은 각자의 일이 너무 바빠 깨소금 볶는 듯한 신혼은 퇴근 후 돌아와 쉬는 짧은 시간뿐이었다. 팀을 구성하여 건설현장에 뛰어다녀야 했던 동호는 어느새 그런 팀을 꾸리는 인력 사무소 소장이 되어 그들의 급여를 책임져야 하는 책임자가 되어있었다. 처음에는 회사에 소속이 되어있었지만, 이제는 독립하여 회사와 인력을 조인해야 하는 사장님이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회사에 소속된 직원들이 제대로 된 급여를 받으려면 계속적인 일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오더를 따와야 했기에 주말이고 주중이고 바쁠 수밖에 없었다. 오더를 따오고, 신입을 양성시켜야 하고, 기존의 직원들이 일을 잘하고 있는지도 확인해야 하고, 기술자를 뽑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집에 들어가는 시간은 늦어지고 부부가 서로 함께하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물론 그의 아내는 그의 일에 대해 이해하고 있었다. 아이를 갖기 전까지는 일을 하기로 동호와도 이야기가 되어있었고, 그녀 역시 자신의 일을 좋아했기 때문에 결혼했다고 해서 쉽게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따라서 동호가 바쁜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도 그녀가 바쁠 때가 있었고, 그녀가 한가한 시간에는 동호가 바쁜 일도 많아 어긋나기만 했다. 그럼에도 서로 너무나 사랑하고 있었기에 어떻게든 그러한 상황을 조절하기로 이야기를 했다.


그들의 해결책은 결국 '아이'였다.

주변의 친구 부부들을 보니,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가정이라도 아이가 윤활유가 된 듯 웃는 얼굴이 많아졌고, 아이 역시 그들 따라 웃는 모습이 여간 귀엽지 않았다. '아이'가 생기면 약속했던 것처럼 아내가 회사를 그만둘 것이고, 그러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질 것이다. 그리고 동호 역시 이제까지 일하며 일을 분담해 왔기 때문에 좀 더 일을 줄이기로 했다.


그렇게 결심을 하니 마치 선물처럼 그들에게 아이가 생겼다. 그들의 결심을 어떻게 안 것인지 정말 결심과 동시에 듣게 된 아이 소식은 그들을 행복감에 휩싸이게 했다. 그러나 동호의 마음의 책임감은 점점 무게를 더했고, 어릴 적에 부모님과 조부모님께 들은 가장으로서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지금까지 와는 다르다. 더 이상 아내가 일을 하지 않을 것이고, 아이와 가정을 위해 좀 더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얻은 아이이기에 이 아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 주고 싶고, 그런 것들을 해 줄 때에 경제적인 부분이 발목을 잡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 역시 동호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걸까. 아이가 어느 정도 크면 자신도 다시 소소하게라도 일을 하겠다고 했다. 동호는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먼저 이해해 준 아내가 고맙고 안쓰럽게 느껴졌다.


가족들의 사랑 속에서 아이는 무사히 태어났고, 정말 귀여운 아들이었다. 동호는 아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었지만 이미 커있는 사업체와 아들에게 무엇이든 다 해주고픈 마음 때문에 좀 더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것들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정말 사랑스러운 아들이지만 정말 이 갓난아이는 행복뿐 아니라 고난도 함께 가지고 온듯했다. 누가 그러던가. 육아 지옥이라고..


밤낮없이 힘차게 울어대는 아이 때문에 아내는 수면부족으로 고생해며 쪽잠을 자야 했고, 동호 역시 아침 일찍 일어나던 습관은 점점 무너져 새벽에 아내 대신 아이를 봐주느라 늦잠을 자게 되는 통에 회사일에 지장이 생기기 시작했다. 거래처 서장들과의 만남에 허둥지둥 챙겨 나가야 하는 자신의 모습이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점점 마음에 여유가 없어졌다. 아내의 모습도 아이를 낳기 이전에 항상 온화하고 여유로운 모습에서 이제는, 머리조차 빗지 못하고 늘어진 티를 입은 채 아이를 케어하고 있는 모습으로 그의 퇴근길을 맞아 주었다.


이런 상황을 원했던 것은 아닌데.. 가족으로서 좀 더 행복하기 위해 '아이'를 갖고자 했던 것인데 상상했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실 생황에 적응하는 것이 여간 쉽지 않았다. 동호는 이제와 아이를 고민할 때 더 많은 생각을 해야 했던 걸까 하며 지금에야 어쩔 수 없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 아내와는 이전보다 더 소통이 어려웠다. 이전에는 그래도 서로 힘든 하루에 대해 함께 맥주라도 기울이며 시시껄렁한 이야기라도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아이를 케어하느라 힘든 아내에게 회사에서 있었던 고된이야기도, 힘들었다는 투정도 전혀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부부사이의 대화는 점점 줄어들었고, 아이가 하루빨리 크기만을 바랐다.


아이가 만 2세가 되었을 때, 아내는 동호에게 하루에 몇 시간이라도 어린이 집에 아이를 맡기고 싶다고 했다. 아이가 생기니 나라에서 육아 수당이 나와 아이의 분유나 생필품에 대해 조금이나마 지원을 받을 수 있었는데 그도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가정에 더 많은 지원이 나오던 시기였다. 게다가 동호의 경우 회사에서 많은 이윤을 남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회사의 대표'였고, 동호 앞으로 매출이 크게 잡혀있는터라 지원등급도 낮은 편이었다. 매일 고생하는 아내에게는 하루 몇 시간이라도 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겠지만, 동호는 생각이 많아졌다. 그런 동호의 생각을 알아챘는지 아내는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이러다가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아요. 아는 언니가 그러는데 아이를 잠깐이라도 맡기고 숨도 돌릴 겸 파트타임 알바라도 하면 육아에도 도움이 된다고 해요. 아르바이트비도 나오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그리고 언제까지 쉴 수는 없잖아요. 아이도 점점 클 테니 앞으로 어린이집, 유치원에서 보내는 시간도 길어질 거예요. 그러면 나도 일을 더 할 수 있고, 당신과 내가 계획했던 대로 좀 더 여유 있게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매일이 힘든 육아 생활이지만 지금도 간혹 예쁜 짓을 하는 아들이었다. 언제까지고 집에만 있게 하는 것도 답이 아닐 것이다. 동호도 그녀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동호는 잠깐이지만, 아내는 정말 퇴근 없이 24시간 아이를 혼자 돌보아야 했기에 그녀에게도 쉴 틈을 주어야 했다. 그렇게 아이는 어린이 집으로 매일 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오전 2시간이었던 어린이집에서의 생활이 3시간으로, 몇 주 후에는 오후까지로 점점 늘게 되었다. 아내는 이전 회사에서 외주로 짧게 일하던 것이 간혹 출근도 하게 되었다. 원래부터 능력이 있던 여자기에 회사에서도 아내의 복귀를 환영하는 눈치였다. 동호는 그렇게 아내도 자신만큼은 아니어도 돈을 벌게 되면 좀 더 여유롭게 생활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그녀가 원하는 대로 허락했다. 하지만 그것도 원하는 생활은 아니었다.


이제는 새벽에 아이가 우는 일은 없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 아이를 챙기며 자신을 치장하는 아내의 모습은 정말 전쟁이 따로 없다. 아이는 어린이집에 안 가겠다고 떼를 쓰는 일이 잦았고, 그런 아이를 달래며 분주하게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아내에게 아침밥을 요구할 수는 없었다. 아이가 아프기라도 한 날에는 회사에 전화해 늦겠다고 하며 병원에 데리고 갔다가 출근하는 아내였다. 동호는 출근을 늦출 수도 없는 데다 해 본 적도 없는 일을 하기에는 아내에게 배울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동호 역시 초보아빠였던 것이다.


그렇게 바쁘고 고된 매일을 보내던 어느 날, 아내가 쓰러졌다.


병원에 입원을 시키고 검사하는 동안 아이를 유치원에 맡기고 출근을 했다. 그동안 빠듯하게 일과 육아를 병행했으니 과로일 거라 생각했다. 당분간 파트타임이라도 보모를 알아보아야 하나.. 하고 동호는 고민했지만 이내 일에 집중했다.


띠리링 띠리링


"가능하면 빨리 병원으로 와 주세요"


아내가 있는 병원의 주치의였다. 무슨 일일까. 동호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낮고 조용했던 의사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동호는 운전대에 손을 얹을 수 없었다. 뭔가 불길했다. 택시를 잡아 타고 그녀가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그동안 많이 피곤해했기에 육아와 회사를 병행하느라 힘들어서 그러려니 하고 수액 좀 맞고 좀 더 힘들면 휴가를 쓰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주치의의 호출이라니.. 단순한 과로라면 이렇게 부르지는 않으리라. 그녀의 몸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최대 6개월입니다"


암이랬다. 이미 퍼질 대로 퍼진 암은 그녀에게 최대 6개월 어쩌면 더 짧은 수명만을 남겨 놓고 있었다. 그 어떤 치료도 많은 시간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란다. 아직 젊어서 전이가 더 빨랐다고 한다. 육아와 겹쳐 몸의 이변을 느끼지 못했을 수 있다. 젊은 만큼 전이도 빨랐지만 겉으로는 크게 표시가 나지 않았기에 몰랐을 수 있다고 했다. 동호는 믿을 수 없었다. 쓰러지기 전까지만 해도 입에 붉은 립스틱을 바르던 그녀였다.


다른 병원에서 재 검사를 받기로 했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민혁이는..?"


이미 하원시간이 지났다. 아까부터 울려대던 전화의 진동은 아마 유치원에서였을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나..

그날부터 동호는 아내가 했던 많은 육아를 인수인계도 없이 스스로 해야 했다. 동호를 도울 부모는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셨고, 아내는 하루하루 야위어 갔다. 병원에서도 그저 살아있는 동안 덜 아프게 하는 정도의 약을 주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녀는 아들에게 자신의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렇지만 아직 만 5세가 채 되지 않은 아이의 눈에는 그저 엄마가 누워있는 모습이었는지 매일 엄마를 보러 병원에 가자고 졸라댔다.


암을 선고받고 3개월 후 그녀는 더 이상 눈을 뜰 수 없었다. 정말 하늘이 무너질 것 같았다.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일을 해왔는지 후회가 되었다. 일을 한다고 했을 때 말렸어야 했다. 아이를 가지자고 했을 때 그러지 말자고 했어야 했다. 그전에 아이 말고 다른 선택을 생각했어야 했다. 차라리 동물을 키울걸. 손이 덜 가는 다른 것을 할걸. 자주 여행을 할걸. 좀 더 예쁘다고 말해줄걸.. 이제와 그 어떤 후회도 더 이상의 노력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을 때 자신의 옷자락이 당기어지는 것을 느꼈다.


민혁이다. 우리 아들. 그녀가 이 세상에 남겨준 단 하나의 흔적. 계속 슬퍼하고 있으면 안 된다. 그녀가 없는 이 세상에서 그녀의 자리까지 동호가 채워서 돌보아 주어야 하는 아이가 있다. 이 아이를 위해 엄마가 되어주고 진정한 아빠가 되어주고 모든 것을 내어 주리라. 이 아들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힘을 다해 뒷받침해 줄 것이다.


동호는 아이를 부둥켜안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고 이미 없는 아내에게 결심을 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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