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북 테라피스트 깽이 May 15. 2023

내가 아이를 잘못 키웠다고 말했다

자녀의 비행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엄마들에게..

직업 특성상 다양하고 많은 엄마들과 이야기해 볼 기회가 있었다.


 이번에 대화를 나누게 된 엄마는 30이 넘는 아들 둘과 이제 6학년이 된 딸아이를 가진 늦둥이 엄마였다.

 늦둥이의 엄마들의 특성은 나이가 많기 때문에 힘이 부쳐 공부뿐 아니라 아이들의 정서적인 부분도 신경써주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엄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엄마의 고민은 이랬다.

이제 성장한 아들 둘이 어렸을 때는 자녀교육에 대해 아무런 지식도 없었고, 그저 내가 배운 대로 자녀를 교육시켰고, 아들들도 잘 따라줬었기에 내가 옳은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아들들이 성장해서 자신과의 골이 깊어지고,  부모에 대한 미움과 노여움이 커져버려 돌이키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이 잘못 키웠다는 죄책감에 이제 6학년이 된 막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이제 다 큰 아들들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아들 둘이 든든한 기둥이 되어주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했던 것도 있었으리라... 성인이 된 아들들이 힘들게 자신들을 키운 엄마를 이해해 줄 것이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가슴을 펴고 "내 아들이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그저 꿈에 불과했던 것이었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했다.


 아들들과의 관계를 개선시키기 위해서 읽지 않던 책을 손에 들었다고 했다. 에세이부터 자기 계발서까지 약 50권의 책을 읽으면서 자신이 잘못했던 것을 되짚어 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아침에 한 시간가량 혼자 걸으면서 자신을 되돌아보았다고 했다.


 그녀에게 필요했던 것은 공감능력과 겸손이었다고 했다. 되돌아보니 너무 자기 뜻대로 자녀들이 살아주기만을 고집했다고..


그런 그녀의 말을 약 한 시간가량 들어주고 나는 나의 이야기를 했다.

 아직도 부족하기만 한 자녀인 나의 이야기를...


 이번에는 그녀가 들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자녀 입장에서 말했다.

 

엄마는 자녀가 나쁜 길을 경험해 보지 않고, 좋은 길로만 걷길 원한다. 하지만 자녀는 스스로 그 길을 걸어보지 않고는 나쁜 길이라고 판단되지 않을 수가 있다. 그리고, 걷지 못했던 길을 걷고 싶어 하기도 한다.


 그렇게 나쁜 길을 경험해 본 자녀는 그제야 엄마가 왜 그 길을 가지 말라고 했는지 알게 된다. 하지만 후회가 되는 부분이 있으면 얻는 부분도 있는 법. 나쁜 길이었던 그 길은 경험으로 쌓여 자녀 스스로 좀 더 나은 길을 택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하기도 한다.


 그렇게 다시 돌아온 길에 만약 부모님이 자신 때문에 그들의 삶이 무너져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그 자책감은 매우 심하게 느껴져서 돌아오기가 힘들 수 있다. 그러니, 혹여라도 자녀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자신들의 삶을 무너뜨리지 않아야 한다.  


아무리 슬프더라도 밥때에 밥을 먹어야 하고, 해야 할 일을 손에서 놓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절대로 삶의 터전을 바꾸지 말아야 한다.


거기에 더하여 또 한 가지.

그들도 힘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대견해해야 한다. 절대로 그들을 타박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그들이 돌아왔을 때는 두 팔을 벌려 꽉 끌어안아주고 믿고 있었다고, 계속 믿어왔다고, 그리고 앞으로도 믿을 거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사회에 내던져진 자녀들은 처음에는 모든 것을 해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여 다양한 도전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자신은 저 큰 사회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생각에 잠식되기도 한다. 그런 때에 누군가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게 해 주는 힘이 된다.


 그러한 역할을 해 주는 것이 바로 부모이다.


 한국의 부모는 예로부터 앞에서 끌어주는 역할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한국은 <동방 예의지국>이라 불리며 어른에게 어른의 예우를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 사회적 통념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른들은 자녀들이 자신에게 어른대접, 즉 자신의 권위에 겸허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을 때,  '되바라진 자식'이라고 하며 화를 낸다.


 나도 어릴 적에 그랬다. 내가 엄마에게 말을 할 때마다 엄마는 내가 말하려는 내용보다 말투에 더 많이 화를 냈다. 그리고 친구와의 트러블에서는 무조건 내 잘못이 크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결국 엄마와의 대화는 그렇게 더 깊어지지 못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엄마로서 나의 날카로운 말투가 부드러워지길 원했고, 친구와의 트러블에서도 내가 좀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원해단다. 하지만 그것으로 나는 엄마와는 대화가 통하지 않고, 부모자식 간임에도 상극(?)인 관계가 되었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그런데 위인전을 읽거나 뭔가 훌륭한 사람들의 자서전을 읽을 때면 내가 아는 한국인 부모들과는 다른 모습의 부모님이 등장했다.


 어릴 적에도 무엇인가를 배워야 한다고 이끌어주기보다는 그것을 배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고, 그중에서 선택하게 하였으며, 생각이 자라게 하는 방식의 교육을 했다. 그리고 자녀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서포트를 해 주었다. 자녀가 잘못된 길로 가려할 때에도 훈계를 하기보다는 한 발 뒤로 빠져서 그들을 지켜봐 주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자녀들은 자신만의 올바른 가치관을 가졌고, 부모도 사랑하는 훌륭한 자녀들이 되었다.

그들의 부모는 부모로서 대접받고자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한국이라는 나라 안에서 자녀를 키워 대접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자라왔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자녀에 대한 기대치가 커진 걸지도...


 나도 자녀를 키우는 입장에서 앞으로 얼마나 가슴을 쥐어뜯으며 고통을 받게 될지 모르겠다. 늘 좋지만도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늘 힘들지만도 않겠지. 보람을 느끼는 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늘 나로서는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노력했고, 그 노력에 반하는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아이를 끝까지 믿고 사랑하고 싶다. 그래서 결국은 함께 웃으며 늙어가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숨겨진 보물을 찾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