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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인간의 고요한 쉼터, 베개

by 미라보 Jan 16. 2025




사랑하는 베게 에게,


오늘은 너에게 그동안 전하지 못했던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어. 너는 언제나 나와 가족들의 잠자리를 책임지고 있지. 너는 산소 같은 존재야. 너 없이는 단 하루도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어. 


하루의 고된 일과를 마치고, 네 품에 머리를 맡기면 너는 언제나 따뜻하게 안아주지. 그런데 이런 너에게 감사 인사를 건넨 적이 있었던가? 미안해.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정말 길지. 내가 태어날 때부터 넌 나와 함께했고, 지금도 하루 6시간 이상 나를 떠받쳐주고 있어. 온종일 내 품 안에 있었던 적도 있지. 레슬링하듯 다리 사이로 끼워 넣고, 발로 누르기도 하고, 때론 화가 나면 던져 버리기도 했어. 미안해.




알고 보니, 너는 명문가 출신이더라. 기원전 7천 년 전 메소포타미아 -지금의 이라크 부근- 에서 태어난 네 조상들은 '인간의 고요한 쉼터'로 불렸대.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너와 네 조상들은 인간들에게 휴식을 제공해온거지. 


네 형제들도 많더라. 목 베개, 목침, 짱구베개, 그리고 외롭거나 무더운 여름 밤을 함께해주는 죽부인까지. 너희 가족은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안락함을 제공하며 자기 역할을 묵묵히 해오고 있지. 




하지만 세상에는 순진한 너를 악용하려는 사람들도 많아. 너의 몸속에 자석이나 옥을 넣고 “이걸로 무병장수할 수 있다”며 너를 비싼 값에 팔아 넘기는 사기꾼들. 가만히 있으면 ‘바보’로 아는 세상의 단면이지. 


그리고 가끔은 부부싸움의 희생양이 되기도 해. 서로 너를 집어 던지고, 치고 박다, 결국 "꼴도 보기 싫다!"는 소리를 듣고 말이야. 그리고 사람들은 '베갯머리송사'라는 말을 쓰면서, 너의 편안함을 왜곡해서 사용하기도 해. 심지어 침대는 너를 시기하면서 화려한 옷을 입혀 달라고 조르기도 해. 하지만 너는 늘 침대와 커플 룩에 만족하며 너의 역할에만 충실해왔지. 




사실, 침대는 지가 과학이라며 떠들고 다니지만, 너는 그가 가지지 못한 미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 너의 부드럽고 유기적인 곡선은 시각적으로 따뜻하고, 그것은 내 머리와 얼굴을 감싸 안아주는 것 같아. 


또, 너의 촉감을 어떻고? 머리에 닿을 때의 감각적인 쾌감, 죽여주지. 그리고 너는 기능적으로도 아름다워. 내 머리와 목을 완벽하게 지지해 주거든. 더군다나 너의 미니멀리즘한 디자인은 지금의 트렌드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니 마음껏 자랑스러워도 돼.


Be proud of yourself!


그뿐이겠어. 너는 수많은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내밀한 순간에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쏟아내는 장소로도 그려지지. 이디스 워튼의 작품, <여름> 속 에서도 마찬가지야 . 


끝으로, 요즘, 목욕한 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네 몸이 ‘누리끼리’해 져서 혼란스럽지? 

미안해. 모두 나의 호르몬 때문이래. 내가 매우 청결한 것은 너도 알잖아. 이제부터는 더 자주 목욕도 시키고 멋있는 옷으로 갈아 입혀 줄게.


정말, 너는 언제나 내 일상의 한 부분으로, 나의 밤을 완성시켜주는 소중한 친구야. 언제나 말없이 나를 지켜주는 너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할게.


언제나 나의 편안한 쉼터가 되어주는 베개에게, 


PS) 나는 과연 사람들에게 존재 자체만으로 평온함을 주는 걸까? 아니면 불편함을 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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