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골린이다. 남들은 골프를 그만둬야 할 시점에 배우기 시작했다. 이래저래 사회부적응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프의 남다른 인문학적 매력에 빠져있다.
그 매력을 두서없이 정리해본다.
21세기 영적 교사로 추앙받는 에크하르트 톨레는 우리가 늘 이야기하는 변화는 다름아닌 바로 '지금 여기'에서 창조할 수 있는 변화라고 했다. 때문에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에 집중해야 변화를 통해 무언가 창조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날씨, 바람, 그리고 내 몸의 상태에 따라 골프의 매 순간은 다르다. 같은 스윙과 샷이라도 결과는 언제나 예측 불가능하다. 골프는 이러한 변동성을 통해 '지금'에 집중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정신적 몰입과 집중력을 기르고, 더 나아가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득점을 목표로 하는 다른 종목들과 달리, 골프는 감점을 목표로 한다. 많은 것을 얻으려 하기보다, 오히려 적게 치는 사람이 승자가 된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처럼 골프는 과도한 소유 대신 절제와 신중함을 가르친다. 식습관에서 소식(小食)의 가치도 깨닫게 한다.
中庸: 과하거나 부족함이 없이 떳떳하며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상태나 정도.
골프는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다. 과격한 운동을 부담스러워 하는 이들을 힐난하지 않는다. 필드를 천천히 걸으며 스윙만 해도 충분한 운동 효과를 제공한다. 무리 없이 심혈관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유산소 운동이니, 관절과 뼈를 소중히 여기는 이들에게 안성맞춤이다.
도덕경 8장 ‘상선약수(上善若水)’: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 흐르듯이 부드러워라.
골프는 실내외 어디서나 즐길 수 있다. 필드 라운딩은 물론, 인도어 연습장이나 스크린 골프를 통해서도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장소와 환경의 제약이 거의 없는 이 유연성은 현대인의 바쁜 일상에 골프를 더 매력적으로 만든다.
컨시드와 멀리건 같은 룰은 상대방 배려를 위한 관용의 실천이다. 컨시드는 상대가 홀을 마치기 전, 그의 노력을 인정해준다. 멀리건은 (골린이로서) 부여 갯수가 충분치 않아 아쉽지만, 골프의 이러한 룰은 승부보다 사람 간의 관계를 중시하는 골프의 매력을 느끼게 한다.
이를 통해 인문, 즉 사람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
철학자 에프쿠로스는 말한다. “쾌락은 즐거움을 보태는 것보다 고통스러운 것을 제거하는 데 있다”
골프공은 매일 수없이 두드려 맞는다. 그럼에도 그는 항상 보조개(딤플)을 내보이며 웃는다. 녀석은 폭행으로부터의 고통을 제거하고 있는 것이다.
녀석을 보며, 삶의 크고 작은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고, 정신적 쾌락을 잃지 말아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된다.
골프가 비싼 취미라는 인식이 있지만,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필드 라운딩과 인도어, 스크린 골프를 적절히 섞어 즐기면 의외로 경제적일 수 있다. 무엇보다 내기를 하지 말아야 하고, 술자리가 길어지면 안된다.
마지막 덤으로, 골프는 자연 테라피를 제공한다.
푸른 잔디는 에메랄드빛 바다 같고, 나무와 연못은 몸과 마음을 마사지해준다. 바람은 나를 응원하고, 몸속 혈액은 순환을 시작한다. 맑은 공기와 햇볕은 무료로 제공되니, 면역력은 저절로 올라간다.
결론적으로, 골프는 삶의 철학과 인문학적 가치를 담은 놀이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