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tvN의 드라마 <정년이>는 세 가지 놀라움을 선사했다.
첫째, 현대인에게 생소한 여성국극 소재가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는 점.
둘째, 우리 소리의 아름다움을 새삼 깨닫게 했다는 점.
셋째, 이 드라마가 웹툰 원작이었다는 점이다. 특히 마지막 부분은 웹툰이 주로 MZ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전 세대를 아우르며 큰 호응을 얻었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웹툰 원작 드라마는 급격히 늘어났다.
유미의 세포들, 스위트 홈, 김비서가 왜 그럴까, 이태원 클라쓰 등이 그러했고, 올해는 무빙, 아일랜드, 블러드 하운드, 이번 생도 잘 부탁해, 경이로운 소문 등으로 그 흐름이 이어졌다.
2023년 7월,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한국 드라마의 세계적 인기를 조명하며 그 상당수가 웹툰을 원작으로 제작된 점을 평가했다.
한국 웹툰 시장의 시작은 ‘1997년 외환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IMF 경제 위기 속에서 만화조차 사치로 여겨지며 산업이 붕괴 위기에 처하게 되자, 일부 만화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웹사이트에 게재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길을 열었다.
지금은 만화 강국 일본에서도 네이버의 라인망가와 카카오의 픽코마가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런 소식들을 접하고 나니 불현듯 과거에 푹 빠졌던 만화들이 떠올랐다
고바우 영감, 로보트 태권V, 마징가 Z, 독수리 5형제, 그리고 은하철도 999.
이들 만화에는 현실 풍자나 사회적 메시지 혹은 영웅적 이상이 담겨 있다.
고바우 영감은 한국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현실을 단 4컷으로 풍자하며 소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로보트 태권V와 마징가 Z는 불의와 싸우는 영웅적 이미지를 통해 정의와 이상을 보여주었고, 독수리 5형제는 팀워크와 연대감을 강조했다. 그리고 은하철도 999는 순전히 메텔 때문에 봤다. 인간 존재의 의미와 삶의 목적을 탐구한 것이라는 건 먼 훗날에야 알았다.
그때 그 시절, 이 작품들은 각기 다른 재미와 용기를 주었다.
독수리 5형제의 1호, 건은 보자기를 두르고 2층에서 뛰어 내릴 용기를 주었고, 비둘기 호를 타고 당당하게 떠난 첫 가출은 메텔 덕분이었다.
이제, ‘미적’ 관점에서 이 만화들을 돌려보고 싶다.
작품 속 인물들의 외형과 성격은 대중이 꿈꾸는 이상적 인물을 상징하면서도 각기 다른 미학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고바우 영감
이 분은 단순하고 친근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둥근 안경을 낀 그의 소박한 체구는 서민적이다. 길거리에서 흔히 보는 평범한 인물이지만, 그 표정은 항상 무엇인가를 관조하고 있다. 눈빛 속에 담긴 예리한 풍자는 사회를 향한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고, 무심한 표정은 그 자체로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로보트 태권V
태권도의 기상과 로봇이라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결합으로, 정의와 힘을 상징했다. 전체적으로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외양은 ‘영웅 삘’이 난다. 태극 문양이 새겨진 가슴과 굵직한 팔, 다리는 힘과 기술의 조화를, 전투 시마다 발휘되는 태권도 기술은 그가 가진 미학을 부각시킨다. 한마디로, 태권V는 ‘휴머노이드’다.
마징가Z
그의 거대한 몸체는 바위처럼 단단하지만, 그 속에는 인간의 감정과 애정이 녹아 있다. 어깨 위의 로켓, 가슴의 포, 그리고 첨단 무기들로 무장된 마징가Z는 천하무적이다. 그는 인간이 만들어낸 기계적 미학을 극대화한 존재다.
독수리 5형제
이들 중 가운데 한 명 만 독수리고, 나머지는 제비, 올빼미, 백조, 콘돌로 구성된 조류 5남매다. 각자 개성과 역할이 있지만 적 앞에서는 강력한 하나가 된다. 어릴 적에 이들은 우주의 악마와 싸우는 불새였다. 이들의 복장은 모두 화려하고 슬림 핏이다. "슈파 슈파 슈파 슈파 우렁~찬" 그들의 엔진소리가 선명하다.
은하철도 999
그녀는 신비롭다. 메텔의 긴 금발과 블랙 원피스는 우아함과 차가움을 동시에 발산한다. 그녀의 차분하고 고요한 표정 속에는 슬픔과 비밀이 숨어 있고, 기계와 인간 사이의 갈등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메텔, 그녀의 불가사의한 매력은 아직도 내 마음 속 깊이 남아 있다.
마크 트웨인은 "어린 시절에 읽었던 영웅들은 단지 책 속에 머무르지 않고,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고 했다. 어린 시절의 영웅들이 열어준 이상(理想)을 간직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라는 의미로 해석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