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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Mar 29. 2019

Vice가 돼버린 vice president

영화 바이스를 보고,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를 통해서 영화 바이스를 관람했습니다.

각본과 감독을 맡은 애덤 맥케이는 SNL의 작가 출신으로 SNL출신인 월 페럴과 함께 전형적인 성인 코미디물을 몇 편 만들었으며, 이후 "빅 쇼트"를 통해 감독으로서의 경계를 넓혀 가고 있습니다.




 이번 영화는 처음 제목을 보았을 때는 빅 쇼트 류의 영화에 계속 도전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본인의 재기 발랄함을 이용해 정치 블랙 코미디를 만들겠다는 의욕이 앞서는 바람에 오히려 빅 쇼트보다 못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너무 많은 비유를 넣으려다 보니, 전체적인 완성도는 빅 쇼트에 비해 좀 처지는 편입니다.


 영화의 스토리는 시사회에 참가한 많은 분들이 다루실 테니, 저는 제가 하고 있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스타일로 한번 영화를 뜯어보겠습니다.


 우선 제목에서 시작을 해보겠습니다.

미국의 부통령 (Vice-president)이었던 딕 체니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이니, Vice란 제목이 무난하다고 여기실 수 있는데, 사실 Vice에는 감독의 노림수가 들어 있습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vice의 단어 뜻을 

 Immoral or wicked behaviour와 Criminal activities involving prostitution, pornography, or drugs.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도덕적이지 않고 사악한 행위 또는 다양한 불법 행위를 저지르는 범죄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감독은 제목에서부터 부통령 vice-president가 저지른 악행 vice에 대해 말하려고 하고 있다고 상당히 직접적으로 밝히고 있는 것이죠. 


 두 번째로 영화의 도입부에 딕 체니의 젊은 시절을 보여주는 부분에서 똑똑한 부인이 한심한 남편의 현재에 실망해서 남편을 부추기는 모습이 나옵니다. 아마도 감독은 맥베스라는 명작의 구도를 빌려올 의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셰익스피어 코드는 이후, 부통령직을 제안하는 전화를 받은 날 저녁 침대에서 두 부부의 대사를 통해 다시 한번 드러납니다. 

 젊은 시절에 보여지는 린 체니의 모습에서는 극의 전체 구도속에 부통령의 부인으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을까 라는 짐작을 하게 하지만, 첫 번째 와이오밍 선거에서 병상에 있는 남편을 대신해 선거 유세를 하는 장면을 제외하면, 오히려 린 체니의 모습은 정치구도에서 한 발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는 현모양처에 가까운 태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무난한 등장인물이 되고 만다는 것이죠. 뛰어난 연기력을 가진 에이미 아담스가 뭔가 보여줄 것 같은 기대만 주고 별게 없이 끝나는 그래서 전체의 완성도에 있어 약간 의구심이 가는 그런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거기다가 한번 넣어보니 감독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이 들었는지, 중반부에 또다시 등장하는 셰익스피어 코드는 좀 너무 한다 싶습니다. 아마도 이 보수주의 공화당원 부부를 스노비즘적으로 보이게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세익스피어스러운 대사에서 오히려 영화를 잘 안다고 잘난 체하는 평론가들의 스노비즘만 드러나 버린 것 같습니다.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몇몇 현지 평론가들이 여기에 관한 글을 남기고 있는데, 대사 중에 린이 딕을 향해 리차드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넘겨짚어 셰익스피어의 리차드 3세에서 대사가 온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는 평론가들이 있더군요. 감독이 직접 썼다고 하는 이 고전스러운 대사는, 주인공들이 잘난 체 하는 모습을 보여 줄 의도였는데 실제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나오는 대사를 사용했을 리가 만무하고 (감독이 등장인물의 실제 모델들을 바라보는 관점을 이해하고 있다면, 주인공들이 침대 머리맡에서 셰익스피어를 외워서 놀고 있다고 보여줄리는 없을 테니까요) 거기에 리차드라고 남편을 부른 이유는 영미권에서 딕이 리차드를 지칭하는 것을 생각하면, 굳이 리차드 3세를 떠올렸다는 게 잘난 체 하려는 비평가들의 숨은 모습만 드러나고 말아 버린 에피소드가 아닐까 싶습니다. (감독이 이런 것도 노렸을까요? )


 사실 이 부분은 감독이 어린 시절부터 흠모해 왔다는 영국의 유명 코미디 그룹 '몬티 파이톤'의 멤버인 John Cleese가 그의 코미디 명작 "A fish called Wanda"에서 처음 사용해서 유명해진 장면입니다.

 주인공 완다로 나오는 제이미 리 커티스가 악당의 변호사인 John Cleese를 유혹하는 장면에서 아무런 매력이 없는 남자에게 혹시 이태리어를 할 수 있냐고 말을 건네며, 자기는 이태리어를 들으면 흥분이 된다고 합니다. 이에 엉터리 이태리어를 던진 변호사는 (우리 개그맨들이 한국말을 꼬아서 일본말이나 중국말인 양 하는 개그를 상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자신 앞에서 흥분하고 있는 멋진 여성을 보며, 내가 이런 멋진 여자를 유혹할 수 있구나 라며, 계속 말도 안 되는 이태리식 발음의 엉터리 소리를 지르는  스노비즘의 한 전형을 블랙 코미디로 보여주는 유명한 장면인데요, 이번 영화 바이스에서도 두 명의 체니가, 어정쩡한 세익스피어스러운 흉내를 내며, 자신들의 잘난 체에서 시작해 정말로 우리가 잘났구나라며 믿기 시작하고 이를 통해 흥분을 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장면의 첫 부분과 끝 부분에 딸깍거리는 전원 스위치 소리를 삽입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이 부분은 의도적인 코미디 씬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친절을 베풀고 있는데, 서두에서도 밝힌 것처럼 이런 다재다능한 SNL스러운 감독의 재치가 오히려 전체 영화의 진행에서는 마이너스가 된다는 생각입니다.


 영화는 중간중간 지속적으로 딕 체니의 심장과 플라이 낚시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심장은 미국의 심장부에 테러가 가해진 장면, 법 위에 군림하려는 딕 체니를 통해 민주주의의 심장인 의회가 무력해지는 모습 등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내레이터로 군데군데 등장하는 묘령의 남자로부터 심장을 이식받게 되는 부분 등까지 심장이 너무 많이 등장한다는 점이고, 플라이 낚시 역시 대통령을 낚는 부분과 마지막 엔딩 크레딧까지 지속적으로 가짜 미끼를 보여주면서 정치가 우리에게 이런 미끼를 던지고 있다는 메시지를 너무나 직설적으로 접근하는 부분이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감독의 재기 발랄함이 드러나는 부분도 상당히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선 배우의 선택과 웃음에 대한 감독의 해석입니다. 

주인공으로 선택된 크리스천 베일은 완벽한 연구를 통해 딕 체니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내고 있습니다. 뭐 의심할 여지가 없는 부분입니다. 크리스천 베일이니까요.

그런데, 럼즈펠트와 부시 역에는 연기파 배우가 아닌 코미디로 더 유명한 두 명의 배우를 캐스팅합니다. 스티브 카렐과 샘 록웰입니다. 


 잠시 웃음이라는 현상에 대해 생각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웃음의 가장 대표적인 그리고 가장 본능적인 모습은 희극적인 요소를 보고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웃음은 우리를 아무런 고민 없이 즐겁게 해 줍니다.


 그런데 실제 우리의 인생에서는 이런 희극적 요소가 배제된 웃음이 꽤 있습니다.


첫 번째는 권위주의와 잔혹함을 숨기고 있는 웃음입니다. 내가 너보다 잘 낫다는 편견 속에서 권위주의는 상대방을 업신여기기 위해 즉 자신보다 못한 너를 증명하기 위해 웃음을 지어냅니다. 

 존 굿맨의 웃음 속에 이런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점차 존 굿맨의 웃음의 진가를 발견한 감독들은 초창기 코믹한 모습보다는 점점 더 권위주의적이고 냉혹한 인물이 필요할 때 그를 찾기 시작합니다. 블랙 코미디에 능한 코헨 형제의 영화들과 법정 스릴러 TV 시리즈인 '데미지' 등에서 이런 모습의 예를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무지를 숨기고 있는 웃음입니다. 남자아이들이 뭔가 잘못했을 때 하지만 본인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모르고 있을 때 우리는 무지의 웃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뭔지 모르지만 본능적으로 웃어넘기려고 하는 거지요. 이번 영화에 등장한 샘 록웰이 바로 이 부분에 대가입니다. 

 '매치스틱 맨'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등에서 보이는 샘 록웰의 웃음은 대부분 이런 느낌입니다.


 세 번째는 무의미의 웃음입니다. 본인이 웃고 있지만 왜 웃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으며, 웃다 보니 웃는 자신이 우스워서 점점 더 웃게 되는, 하지만 그러다 보면 웃음과 울음의 차이가 종이 한 장 밖에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페이소스가 들어있는 웃음입니다. 밀란 쿤데라가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를 통해 '희극성의 희극적 부재'라고 설명하고 있는 이 웃음은 마찬가지로 이번 영화에 등장하는 스티브 카렐이 대가 중에 한 명입니다. 그가 등장하는 앵커맨 2에서 (바이스의 애덤 맥케이가 감독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그는 한 번 웃기 시작하면 왜 웃는지를 모르면서 계속 웃게 되고, 그러다가 친구들한테 말합니다. 내가 왜 웃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그러면서 웃음을 짓고 있는 얼굴은 점차 고뇌에 찬 표정으로 변해가고 친구들이 그만하라고 하면 그제야 다시 '아 이제 제자리를 찾았다고'하면서 원래의 즐거운 웃음을 짓는 표정으로 돌아옵니다.


 바이스를 감독한 맥케이는 바로 이런 웃음의 다양한 면모에 대한 대가입니다. 딕 체니를 연기할 배우는 실제 인물을 완벽하게 재현할 연기파를 쓰고 있지만, 부시와 럼스펠트의 모습은 웃음을 풍자한 커다란 캐리커쳐를 보여주는 연출을 선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스티브 카렐과 샘 록웰은 본인들의 이전 영화들에서 보여주었던 전형적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데, 이 들이 보여주는 무지한 웃음과 무의미한 웃음은 정확하게 부시와 럼즈펠트를 풍자하고 있습니다. 부시의 심한 남부 악센트나 럼즈펠트의 날카로운 어투 등을 정확히 재현하는 연기보다는 이 편이 훨씬 더 감독이 보여 주려는 정치 코미디물을 잘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또 다른 감독의 재능은 엔딩 크레딧에 사용된 번스타인의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중 '아메리카'입니다. 번스타인은 예전에 다른 글에서 밝혔듯이 풍자에 아주 능한 작곡가입니다.

오리지날 가사의 내용도 미국에 이민 온 푸에토리칸들이 미국을 유토피아적인 모습으로 찬미하는 부분과 하지만 이 유토피아는 결국 백인을 위한 것이라는 푸념을 번갈아 등장시키고 있고, 음악적으로도 6/8과 3/4이 섞인 리듬을 채용하고 있습니다.


 hemiola 와 habanera 리듬을 섞은 것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명확하게 둘 다 아닌,  그리고 작곡자 스스로는 이 곡의 템포를 “Tempo di Huapango” 이라는 멕시칸 스타일로 지칭을 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모든 것이 섞여서  사실 아무런 실체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음악에 녹여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번스타인의 재치에 감독은 약간의 개사를 통해 좀 더 스토리에 맞는 느낌을 주며 영화를 끝을 맺고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느낌을 주는 코미디 영화란 제약으로 인해 영화 전체에 음악의 비중을 두기 어려운 면을 생각한다면 마지막에 삽입한 '아메리카'는  감독의 풍자에 대한 재능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영화를 해체하여 몇몇 부분들을 들여다보았는데, 다시 하나로 합쳐 최종적으로 전체를 보며 드는 느낌은 이제 이전의 코미디 시대는 가고 새로운 코미디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코미디도 웃음보다는 정보의 전달이라는 (물론 영화 속에서 감독은 현실 속에 등장하는 팩트들이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새로운 양상을 띠고 있으며, 저는 이 현상을 '계몽주의적 코미디'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얼마 전 영국 코미디 그룹 몬티 파이톤의 John Cleese가 '더 이상 BBC에서 몬티 파이톤을 틀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가 Too funny 해서 이다'라고 글을 남긴 것을 보았습니다. 대세는 그의 이런 반응이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말하고 있고, 이런 코미디에 대한 현대의 시각은 이번 영화 '바이스'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젠 old-school 이 되어버린 웃음을 보여주는 코미디 시대의 종말과 코미디에서도 무엇인가를 배워야만 하는 힘든 현대를 사는 우리의 모습은 오늘 영화를 통해 알게 된 가장 코믹한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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