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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십 살 김순남 Apr 13. 2024

1950년

내가 태어난 1950년에는 6.25 전쟁이 터졌던 시기다. 다행히 나는 전쟁이 터져 아수라장일 때 엄마 뱃속에 있다가 두 달 후에 세상에 나왔다. 그 힘든 전쟁통에서 엄마 젖꼭지만 찾는 갓난아기여서 참혹한 현장과 세상의 고통을 기억 못 하고 지나왔다.    

 

내가 태어난 8월에는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이 부산으로 피신을 와 있던 시기다. 그가 초대 대통령이 된 시기도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로부터 내가 73살이 되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에는 열세 분의 대통령이 나왔다.    


모두 열심히 일하셨기에 50년대에 태어나 우유와 강냉이 가루를 배급받아먹으며 자라나 지금은 해외여행을 할 수 있을 만큼의 경제적으로 부흥한 나라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유감스럽게 열 세분의 대통령 중에 제대로, 대통령직을 무사히 끝내고 그나마 노년의 시간을  온전히 지내신 분은 몇 분 되지 않는다.     


안쓰럽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분들의 인생이 측은하다는, 말도 되지 않는 애긍심을 가진다. 아마 내가 나이가 많아서일 테다. 그분들도 나와 같이 인생 여행길에 나섰을 때는 그들이 왕관을 쓸 거라는 생각은 못했을 터이다. 긴 인생길에서 걷다 보니 그들은 그런 길로 가게 되었을 터이고 그러다 보니 그들이 선택한 것은 왕관이었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이 명언을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떠 올린다. 그들은 모두 그 무게를 견뎌야만 했고,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중간에 왕관을 자의든, 타의든 버려야만 하기도 했고, 온 힘을 다해 왕관을 지키고, 다음 사람에게 왕관을 물려줬어도 그 뒤에는 버텨왔던 왕관의 무게로 인해 쓰러져야만 하기도 했다.      


세상은 갈수록 인정이 없어진다. 이 표현은 늙은 나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세상이 맑아졌고, 사람들은 지혜로워졌고, 정의로워졌기 때문이라고 해야겠다. 거기에 덧붙여 더 냉정해지고 더 잔인해지기도 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어렸을 때는 항상 배고팠고, 맛있는 게 그리웠고, 좋은 옷도 그리웠다. 누구든 배만 채워주면 좋았던 시기였다. 한 집안에는 아이들이 기본적으로 다섯여섯 명이었다. 자식들이 많으니 부모들은 항상 허기가 졌고, 밤낮으로 일하느라 허리가 굽어졌다.     


나라에서 나섰다. 아이는 많이 낳지 마라. 둘 만 낳아 잘 기르자란 표어를 내걸고 열심히 계몽했다. 사람들은 그 말을 따랐다. 그랬더니 점점 잘 살아졌다. 나라에서는 더 박차를 가해서 아들, 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란 표어를 내걸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남아선호사상이 짙게 남아있던 터라, 딸 만 둘을 낳은 사람은 아들을 낳기 위해 계속 자식들을 낳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아들, 딸 구별 안 하고 하나만 낳는 시대가 왔다. 이제는 남아선호사상은 옛 시간 속의 유물이 되었다. 아들만 둘 있으면 목메달이고 아들 하나, 딸 하나면 은메달, 딸 둘이면 금메달감이라는 우스개가 나올 정도로 여성이 남성을 앞질러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달려온 시간 속에 세상이 많이도 변했다.      


바다가 땅이 되고, 육지가 강이 되기도 했다. 다닥다닥 붙은 판잣집, 가난이 끈적끈적 달라붙은 집들이 사라져 가고 하얀 시멘트 집들이 성냥갑 같은 모양으로 하늘을 찌를 듯 올라가기 시작했다. 땅 몇 평에 집이 40채 50채가 세워지는 세상이 되었다.      


옛 시간에서는 잘 사는 부자들은 넓은 땅에 99칸의 집을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의 부자는 하늘과 가까운 꼭대기에 사는 사람들이 부자다.    

  

항상 곤궁했던 살림살이에서 하는 말, 남의 집에 빌리러 가지 않을 정도만 살자는 것이 최대의 꿈이었었다. 빚이란 가난의 상징이었고, 큰 빚은 더 큰 가난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빚도 재산이다. 빚이 많은 사람이 부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세상이 거꾸로 가는 것 같아 눈이 빙글빙글 돌 정도다. 이 현실을 어떻게 이해하며 남은 시간을 살아가야 하는지, 살짝 두려움도 생긴다.      


둘 만 낳아 잘 기르자, 아들 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 그것만이 잘 살 수 있는 길이다,라고 외치며 달려왔는데, 너무 열심히 멀리 달려왔나 보다. 언제부턴가 다시 많이 낳자로 바뀌었다. 아이를 낳으면 출산 장려금, 즉 돈을 줄 테니 낳기만 하라, 로 바뀌었다.

불과 60년 만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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